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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pr 11. 2016

벌레와 동침과 동거인의 상관관계

어른이 되서도 혼자 못 하는 두 가지

벌레와 동침과 동거인의 상관관계

그날은 저녁을 먹고 두 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 그래서 새벽 3시가 돼도 잠에 들 수 없었다. 이미 11시부터 잠든 동생은 옆에서 그르렁거리는 중이었다. 나는 불 꺼진 방에 가만히 누워서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패드 불빛을 벽 쪽에 비췄다. 손가락 두 개 만한 벌레가 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끼얏!!!


본능적으로 위급상황임을 감지했다. 재빨리 벽에 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방이 환해졌다. 동생은 깨지 않았다. 커다란 벌레 놈이 벽을 기어서 천장으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거실로 나가서 해충제를 가져왔다. 그리고 벌레한테 발사했다. 치지직 소리를 내면서 해충약이 양껏 품어져 나갔다. 해충약이 부스터라도 되는 양 나는 점점 뒤로 물러섰다. 적정거리 유지는 필수다.


벌레는 가소롭다는 듯 날아갔다. 어디로? 옷장 옆으로. 나는 해충약을 발사했지만 그것은 옷장 옆에 쌓아둔 옷 박스 사이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디? 이불 깔아놓은 곳 바로 옆이다. 이 말은 즉, 그놈이 언제든 내 이불 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소리고..... 상상한 순간 아찔했다.


방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벌레도 싫고, 해충제 뿌리는 것도 싫다. 벌레를 죽이지도 못하고, 죽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 방안에 같이 동침하는 건 끔찍했다. 부등식으로 치자면 벌레는 최하위다. 그것도 날아다니는, 어른 손 두개만 한, 그런 무시무시한 것들이랑 한 밤을 보낼 순 없다.   


나는 용기를 내서 옷 박스를 꺼내보았다. 그때 벌레 시체가 툭 떨어져 나왔다. 운명했다. 나는 겁에 질려 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방으로 다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서 동생을 막 깨웠다. 일어나, 일어나 봐. 지금 위기야, 비상사태야. 아주아주 위급한 상황이라고. 잠에 깨면서 낑낑대는 동생에게 나는 '저것 좀 빨리 치워줘'라고 말했다. 동생은 눈을 감은 채로 뭐라고 중얼댔지만 일어났다. 어떤 거냐면 '나도 벌레 못 잡아' 이런 내용이었다. 동생이 눈을 뜨는 낌새가 보이자 나는 안방 밖으로 튀어나갔다. 거실에서 계속 동생을 재촉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날아갔어? 잡았어?'


동생은 쓰레받기랑 빗자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재빨리 갖다 주었다. 그리고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사체를 묻어주진 못해도 밖에다가 놔두고 오라고. 좋은 곳으로..... 그리곤 바로 작은 방에 들어가서 왔다 갔다 거렸다. 동생이 들어오고 현관문을 잠갔다.


해충제 냄새 때문에 창문을 다 열어놓았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옷장에서 멀찍이 뗐다. 내 자리가 옷장이랑 더 가까웠다. 이부자리는 킹사이즌데, 나는 최대한 중간쯤에서 잤다. 덕분에 동생은 끄트머리에서 잤다. 내 옆에 한 명 더 누워도 되는 공간이 생겼다. 안전거리 유지는 중요했다. 자꾸 그 벌레 생각이 나서 괴로워하다가 잠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잘 때가 되면 생각난다. 끙.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금 새삼스레 룸메이트, 또는 가족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독립을 하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혼자는 못 살 것 같아. 사실 결정적으로, 밤에 혼자 자는 걸 못한다. 혼자 못 자.... 바로 옆이든 다른 방이든 집 안에 한 명이 더 있어야 한다. 부득이하게 나 혼자 자야 하는  밤이면 늘,


1. 불을 켜놓고 빛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새벽에 잠들거나

2. 불을 켜놓고 결국 아침에 해 떠서 불 꺼도 괜찮으면 잠들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 주말에 동생이 고향에 가서 이틀 내내 불키고 새벽에 잤다. 귀신도 무섭고 벌레도 무서운데 혼자 자는 게 제일 무섭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옆에 누구라도 한 명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잔다. 진짜 그곳이 어디든 마음 놓고 편히. 시끄러운 카페든, 낯선 민박집이든, 친구도 없는 데 찾아간 친구네 할머니 댁이든, 회사 옥상이든, 편집실이든, 심지어 같이 일하던 파트너의 회사에서도 잘 잔다. 올해 초에도 작년에 같이 일했던 홍보대행사 사무실에 놀러 가서 소파에서 잠들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찾아간 거였다. 자기들은 일한 테니 주무셔도 된다고 권유는 하셨지만, 진짜 잘 줄은 몰랐죠? 나도요.


지금이야 동생들이랑 같이 산다만, 언제까지 같이 살 순 없으니. 훗날 미래의 동거인은 두 가지를 귀찮아해 주지 않았으면 한다.

 

1. 벌레를 버려주면 되고  

2. 옆에서 자 주면 되고

 

다른 방이라도 같은 집 안에서만 있으면 혼자서도 불 끄고 잘 수 있다. 아주 숙면한다. 365일 불 키고 잘 순 없으니깐.... 부리고 자면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


결국 어른이 돼도 혼자 못 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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