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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ug 11. 2018

[2월] 빙하기를 날려버릴 창작더미를 찾아서

꽁꽁 얼어있던 그 시기가 정체성을 키우고 견고해지게 만들었다.


오늘의 한파는 내일의 한파가 이긴다.


스튜디오에 입주한 지 갓 100일 차. 그 사이 우리나라는 시베리아 바람을 직통으로 맞는 풍수를 획득했다. 오늘의 한파는 내일의 한파가 이겼으며, ‘최강’ 기록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데, 날씨는 너-무 부지런하게 차가워졌다. 


먼 훗날 한 아이가 ‘패딩과 코트와 나그네’에 대한 전래동화를 묻거든, ‘아이야, 날이 풀린 줄 알고 패딩이 아니라 코트를 입은 나그네는 그 자리에서 동사했단다.’고 말하리라 (교훈: 겨울 코트의 꽃말은 ‘너를 죽을 만큼 사랑해’). 언젠가 ‘인생이란 소풍 참 재밌었소.’하고 훌훌 떠나 단군님을 만나는 날이 오면, 우리나라의 지리 선정에 대해 묻겠다. 그럼 그분이 말하겠지. ‘그 질문은 네가 처음이 아니리라!’




거리 위에서 냉동실 아이스크림 체험을 하던 사람들


지난겨울, -17도였던 날이 있었다. 사람들은 냉동실 아이스크림 체험을 하러 거리로 나왔다. 나 역시 하나의 아이스크림이 되어 성수동으로 왔다. 추워서 몸이 베베 꼬이고 얼굴은 빨개졌으니 스크류바로 하겠다. 아니면 수박바 정도. 안전가옥은 글쎄, 거대 냉동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외부랑 다른 점이 무엇인지 기술하시오(15점). 기분 탓인지 성수동은 더 추웠고, 76년생 건물은 오한이 왔다. 물이 얼고, 화장실은 터지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운영 멤버들은 비상 대피처를 마련하는 재난구조대 같았다.


 - 하지만 그 날 우린 모두 아이스크림이었다고요. 그럼 아이스크림 구조대.
 ‘여긴 끝났어! 모두 라이브러리 열풍기 앞으로!’
‘화장실은...! 화장실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거 버리고 모두 살아남아야 해! 대피!’
‘여러분 모두 저희만 믿으십시오...!’ 


나는 (아이스크림) 재난구조대를 뒤로 하고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이 어디냐? 안전가옥에서 가장 따뜻한, 스튜디오 2층 히터 아래였다. 라이브러리에서 가져온 담요와 함께. 



그러나 -17도에서는 어느 곳에 선들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따뜻한 곳도 냉동고 안의 온열기다. 머리로는 히터 바람이 떨어져서 눈을 뜨지 못하겠는데, 발은 시리고. 너무 건조해서 히터를 끄면 급속냉동이 되는 신기한 체험도 가능했다(내 살아생전 이런 체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건만.). 내 눈의 한쪽 쌍꺼풀처럼 양극단을 사랑하는 나지만, 이번 온도차는 좀 힘겨웠다(왜 그래? 내가 잘할게.). 그래도 히터를 최대 온도로 올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썼는데, 사실 안 썼다. 못 썼다. 영하 17도로 얼어붙은 날씨처럼, 소설에 대한 나의 열정도 급속 냉각했다(날씨 탓은 이렇게.). 그렇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고, 일시 정지. 딱 1년간 쓰기만 하자는 목표를 채우고 나니, 여러 가지 질문들과 두려움이 그제야 튀어 오른 것이다. 우리나라에 잠시 빙하기가 찾아온 것처럼, 내게도 빙하기가 찾아왔다. 지난 1년을 불태웠던 뜨거웠던 열정은 꽁꽁 얼어서 얼음판이 되었다. 나는 그 위에 내가 받은 질문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건데? 소설? 드라마? 영화?
다 성격이 다르다고.”


“우선은 잘 쓰는 글, 잘 먹히는 글을 먼저 쓰면 좋잖아.
에세이를 쓰고 그다음에….”


“순수문학을 할 거야? 장르문학을 할 거야?
둘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때의 나는 언어를 잃은 것 같았다. 답이 뭔지는 어렴풋하게 느껴지는데, 입을 열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꽤 오랜 기간 끈질기게 생각해야 할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답을 내려고 하니 한숨만 나왔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순간 냉동됐다. 빙하기였으니까. 


내 눈의 한쪽 쌍꺼풀처럼 나는 양극단을 사랑하며, 경계선에 서서 필요할 때마다 이쪽저쪽을 드나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때는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그러지 않으면 왠지 내가 한쪽 손에 잡고 있는 것들이 서로 반대쪽으로 뛰어나가서, 나라는 존재를 찢어놓을 것 같았다. 모두 잡고 있을 힘이 약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모두 내려놨다. 이제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다고 판단해서 귀도 닫았다. 비어버린 손으로는 책을 들었다. 내 글을 쓰는 대신 생각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여러모로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읽기 좋은 겨울날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땐,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갔다. 


덕분에 1월 중순 이후로 나의 유일한 낙은 라이브러리에서 발견한 좋은 책들을 5권씩 대여해서 읽는 거였다. 날은 추웠지만 햇볕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특히나 안전가옥은 낮부터 오후 4시까지 햇빛이 굉장히 좋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금사빠.). 추운 날, 빛이라도 더 쐬려고 점점 일찍 스튜디오에 나오기 시작했다. 라이브러리에서 맘 내키는 대로 책을 골라서, 2층 스튜디오 소파에 앉아 바캉스 즐기듯 책을 읽었다. 


라이브러리 문 앞에서 가장 가까운 칸에 꽂힌 소설부터 읽어나갔다. 고래, 인생, 개를 산책시키는 여자, 그믐, 태풍이 지나가고, 녹턴, 해저 2만 리 등등. 굳이 경계를 나누자면 순수문학 쪽으로 등단을 준비하지만, 라이브러리에는 경계를 나누지 않아도 좋은 책들이 많았다. 동시대에 잘 팔리는 책, 잘 읽히는 책, 문장이든, 문제의식이든 공감이든 뭐라도 생각할 요소를 하나라도 던져주면 좋은 책이라 생각하니까. 다 읽지 못할 것 같은 아주 두꺼운 책들도 빌려서 스튜디오로 갔다. 빌려온 책들을 책상에 쌓아놓으면, 그제야 마음의 평화가 왔다. 


나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는 걸 좋아한다. 빨리 다른 책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읽히면 다른 거, 또 다른 거. 글은 내 마음대로 못 쓰는데, 책이라도 내 마음대로 읽어야지. 게다가 남이 엄청나게 고생해서 만든 창작물을 한꺼번에 쏴-악 읽어버리는 건 엄청나게 짜릿한 경험이다. 내 인생의 질문은 아직 마음대로 답할 수 없었지만, 책들은 마음대로 봤다.



작법서도 같이 봤다. 살면서 본 작법서는 딱 한 권인데(유혹하는 글쓰기), 평생 읽을 작법서는 다 본 것 같다.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 소설 쓰기의 모든 것, 신화 그리고 시나리오, 소설가의 일, 글쓰기 항해술 등등. 이 중 좋았던 것은 두 권,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과 <소설가의 일>이다. 좋았던 이유는 하난데, 지난 1년을 복기할 수 있어서였다. 글을 쓰면서 어딘가에 A를 무작정 놔두고, 나는 그 자리에서 떠나야 했던 경우가 늘 생겼는데, 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글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나서야 왜 그 자리에 A를 놔뒀는지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의아함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다. 직관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아아, 이래서 이런 거구나!’할 수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였고, 철학과도 관련된 내용이었다.


<소설가의 일>은 정말 재밌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 1년 동안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래서 그냥 첫 장 읽는 순간부터 좋았다(금사빠.). 사실 이렇게 내가 몰랐던 일들, 몰라서 그냥 놔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오호 오호! 그래그래! 그런 거였어! 하면서. 



그렇게 2~3주간은 글도 안 쓰고 책만 읽었다. 모임에서 글을 제출해야 하는 기간이 다가와서 새 글을 쓰긴 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던데, 소설에서는 첫 장이 99%라고 생각한다. 첫 문장은 50% 정도? 그래서 첫 문장, 첫 장이 마음에 들면 이미 그 소설은 다 쓴 소설이다. 끝까지 구성이 다 풀려야 첫 장을 쓸 수 있으니까. 남은 건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망했다. 내가 쓴 첫 장이 전혀 정이 안 가는 것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분량을 늘려가며, <나는 천재다 ↔ 나는 망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완전 망했다!!ㅠㅠ’로 결론이 났다. 그때까지 썼던 대여섯 장을 다 버렸다. 여간 찝찝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왕 망한 거 마음 편하게 책이나 봤다. 



그러던 중, 마음속에서 딱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을 읽던 중에 갑자기 첫 문장이 생각났다. 뭐야 이런 게 어딨어? 싶었던 그런, ‘마음속으로 문장이 떠올랐다.’이런 거였다. 진짜 딱 한 문장이 올라왔다. 전혀 관련도 없는 책이었는데. 어쨌거나 이때부터 너무 흥분되는 거다. 읽던 책은 당장 치워버리고 그대로 첫 장을 써 내려갔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은 소설을 다 쓰고 나서도 ‘내가 이걸 쓴 건가?’하는 의아함이 가득했다면, 이번에는 그냥 너무 신났다. 너무 재밌고, 써 내려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6시간 만에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세상에! 결과는 상관없었다. 내가 흥분한 것은 재밌다는 것 그 자체였다. 


진짜 짜릿하고 재밌었다. 재밌다니? 글 쓰는 건 즐겁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워! 였는데, 재밌다니!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태어난 지 10개월이 채 안돼서 아직 기어 다니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 날 벌떡 일어나서 걷더니 얏호 신난다! 짜릿해! 하고 뛰어다니는 기분? 더 이상 예전처럼 의문이나 의아함은 없었다. 그냥 ‘재밌다’그 자체였다. 글 쓰는 건 너무나 재밌지만,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했는데-나는 그전까지 진짜 재미가 뭔지 몰랐다. 비로소 알게 된 재미에 모든 퍼즐이 하나씩 맞춰졌다. 


모든 시간에는 순서가 있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월은 ‘그래야만 했다.’ 비록 그 과정은 괴롭고 힘들었을지라도, 꼭 필요했음을 다시 알았다.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보고, 재정비하고, 힘을 길러줄 시간이. 앞으로도 글을 써가는 힘을 갖기 위해, 나는 그 시기를 거쳐야만 했다. 





되돌아보면 빙하기처럼 꽁꽁 얼어있던 그 시기가,
내게는 정체성을 키우고 견고 해지는 순간이었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들을 비로소 몸으로 체득하고 밖으로 뱉어낼 준비를 했다. 너무나 벅차다고 생각했던 질문들에, 그래서 일단은 다 놓고 생각해보자고 했던 그 질문들에, 나는 이미 알아서 답을 찾았다. 특히나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장작더미로 던져주며, 재촉하지 않고 알아서 생각할 시간을 주었더니 불은 다시 타올랐다. 좋은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를 음미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은 전부 창작을 위한 장작이었다.


재미나게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니, 비로소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게 됐다. 지난 1년 동안 괴로워하면서도 글을 완성하고, 어떻게든 붙잡고 늘어졌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에 읽은 작법서 들을 작년에 읽었다면 나는 한 장도 읽지 못하고 덮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을 테니까. 해 봐야 아는 것들은 그래서 값지다. 




열심히 장작을 던져주고 불을 지쳤더니 필요한 것들은 알아서 완성됐다. 


1년간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흡수한 것들, 시행착오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은 내가 살아온 경험들과 알아서 충돌하고, 무언가 만들어냈을 것이다. 나의 시행착오들, 점진적인 성취들, 순간의 감정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서 돌아왔다. 이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피드백으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이해가 됐고, 기획자와 소설가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봄이 오듯이. 겨울의 계절이 지나고, 무언가 피어날 시기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질문은? 그게 대한 답은? 더 이상 소용없었다. 답은 스스로 알게 됐다. 열심히 장작을 던져주고 불을 지폈더니, 필요한 것들은 안에서 알아서 완성됐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양쪽 손에 어떤 것을 잡든, 모두 내 앞으로 끌고 올 수 있는 힘이 생겼음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잡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느냐? 무엇이든 재밌을 수 있느냐? 하는 나의 정체성과 힘이었다. 빙하기에서 찾아온 것은 아이러니하게 어떤 환경에도 꿋꿋하게 내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를 받쳐 줄 실력이었다. 


그 사이 날이 조금 풀렸다. 시베리아 북풍은 슬쩍 물러났고, 아이스크림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즈음의 나는 화염이었다. 빙하기는 끝났고, 이제껏 먹어치운 장작더미들을 창작으로 모두 토해낼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김보영(Bo). 

I'm your worst fear, I'm your best fantasy. 나의 소설이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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