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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ug 10. 2018

[1월] 당신과 나의 안전한 인연

어떤 청춘의 일부는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내 인생 첫 번째 작업실이 생기다. 


나는 10월 17일에 안전가옥에 왔다. 한 달 동안 베트남에 가서 글을 쓰겠다, 산에 들어가서 글을 쓰겠다, 괜한 집 놔두고 고시원에 들어가겠다는 둥 어딘가에 나를 가둬놓고 싶어서 마음이 안달이 나있던 시기였다. 나는 안전가옥을 발견하자마자 이곳에 반했고, 어떻게 하면 작업실을 쓸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날 대기를 걸어놓은 프리미엄 1인 독서실과 베트남행 티켓은 바로 기억에서 지워졌다. 


두 번째 방문에 시즌 패스를 끊었고, 베타 프로그램 참여자로 스튜디오를 이용하게 됐다. 내 인생 첫 번째 작업실이 생겼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온전히 원하면 온 우주가 들어준다.’는 문구가 있는데, 안전가옥과의 만남도 그 일부 같았다. 1월부터 시작하여 10월까지 - 도전, 희망, 우울, 슬럼프, 성장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무수한 감정들을 단기간에 만나게 해 준 소설에 승부수를 던지고 싶던 순간이었다. 이제 드디어 해갈의 시기라고, 나를 쏟아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났다고 느꼈다. 


라이브러리 실내 / 스튜디오에서 바라본 라이브러리 / 2층에서 내려다 본 라이브러리.



나는 매일 2층에 틀어박혀서 무언가 썼다.  


10월 넷째 주부터, 휴무 날을 제외하면 매일같이 성수동으로 왔다. 그때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내 과거가 아니라 타인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일상은 사라지고 글에만 몰두하던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매일 앉는 2층 문 앞쪽에 틀어박혀서 무언가 썼다. 그때는 스튜디오를 거의 나 혼자 쓰는 날이 많았다. 컴퓨터로 무언가 두드리고 있으면, 아래층에서 노래가 올라왔다. 웃거나 떠드는 목소리도 들렸다. 소음에 민감한 편이지만, 전혀 거슬리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다. 누군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지켜주고 있구나, 하고 느껴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무턱대고,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2층 스튜디오 통로. 작업하다 나와서 기분전환하던 곳.



가끔은 2층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억새풀과 바닥에 깔린 나무 판때기,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 스튜디오와 라이브러리 사이에 놓인 나무 테이블과 의자들을 보고 있으면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다. 햇살이 가장 강렬한 오후 4시도 좋아했고, 빛과 어둠이 만나는 시간도 좋아했다.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면 괜히 마음이 벅찼다. 뭘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여기 있다’는 것 자체로 울컥해졌다. 그때는 내가 있는 공간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곳에서 내가 어떤 경험하게 될지도 몰랐으면서, 글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안전가옥에 스며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처럼, 아무런 경계 없이. 물론 나는 지금도 이곳에 있다. 



트레이드마크, 억새풀.


신춘문예를 앞두고 내가 가진 모든 힘을 글에 쏟던 시기.


11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안전가옥 자체 프로그램인 회고전 참가를 앞두고 스케줄러로 사용했던 달력을 한 장씩 살폈다. 칸마다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과 가끔 붉은색 네임펜으로 강조한 일정들을 보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 나 되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그런데 10월 말부터 공란이 시작됐다. 11월은 점하나 찍히지 않았다. 새것처럼 깨끗한 11월 달력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차올랐다. 그것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르겠고 그저 울컥할 뿐이다. 그때의 나는 거의 안전가옥에서 살다시피 했다. 집에 돌아오면 펜 하나 들 힘없을 정도로 쓰러지던 - 내가 가진 모든 힘을 글에 쏟던 시기였다. 


12월 마감인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썼던 글을 퇴고하거나, 아예 새로운 글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성수동에 와서, 11시에 마감할 때까지 있다가 집에 갔다. 노트북도 놓고 다녔다. 집에 가면 너무 힘들어서 두 시간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다가 잠이 들었다. 다시 아침이 되면 밥을 먹고 성수동으로 왔다. 같은 자세로 타자를 치느라 어깨가 굳고, 아파도 계속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말 미친 듯이 쳤는데, 하루에 못해도 A4 4장 넘게는 글을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의 일상은 사라지고, 하루는 텅 비어갔지만 그 상황이 예전처럼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면 돌아갈 곳이 있었고, 작업 중에는 '누군가 이곳에서 글 쓰는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막연함 때문이었다. 덕분에 깨끗하게 비어버린 나의 하루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이어갔다. 나는 쏙 빠져나와서 몸만 빌려준 11월이었다. 


매일매일, 글쓰기.



처음으로 중편소설을 완성했다.


그 결과 11월 동안 중편소설 하나와 단편 하나를 완성했다. 단편소설은 몇 번 써봤지만, 중편소설을 완성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소설은 12월 1일에 D신문사에 제출했다. 그 날은 아침 일찍부터 안전가옥에 와서, 1층과 2층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 거렸다. 스튜디오나 라이브러리에 있는 멤버들에게 이게 낫냐, 저게 낫냐며 소설 시놉시스를 보여주고 투표를 하고, 고치고, 또 보여주고 또또 보여줬다. 고개를 끄떡거려 줄 때까지. 오후 5시 57분에 신문사에 겨우 제출을 하고, 다시 성수동으로 돌아왔다. 운영멤버들과 같이 밥을 먹고, 나는 자리를 정리하려고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긴장이 다 풀려서 거의 눕다시피 의자에 앉았다. 스탠드만 킨 채로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책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이제 끝난 건가? 아니면 그냥 피곤하다? 아니다. '했다.' 이거였다. '나 결국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냈던 소설을 다시 프린트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쓴 소설을 보면 늘 기분이 이상했다. 1월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소설 한 편을 썼을 때도 묘한 감정에 휩싸여서 계속 되물었다. ‘이걸 내가 썼다고?’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소설은 합평 모임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는데, 솔직히 그때도 내 얘기가 아닌 것 같아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유체이탈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걸, 썼다고?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뒤, 스튜디오 의자에 앉아서 이번에도 나는 똑같이 되물었다. 이걸 내가 썼다고. 다만, 예전에는 늘 그 끝이 물음표였다면, 이번에는 느낌표였다. ‘이걸, 내가, 썼다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쓸 수 있다. 벅참. 불 꺼진 스튜디오 2층에서 혼자 앉아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이제야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된, 내 생애 최초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걸,내,가,썼,다,고.  


나는 그전까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집에서, 카페에서, 비행기에서, 버스에서, 공항에서, 터미널에서, 지하철에서, 지하철역에서, 도로에서 등등. 노트북과 USB만 있다면, 거리에 앉아서라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내 무의식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들을 작업실에서 풀어놓았다. 이야기의 시작은 발이 닿았던 그 어딘가 였지만, 그 끝은 안전가옥에서 맺었다. 


그 글은 집에 가는 길에 릭에게 주었다. '제가 여기서 처음 완성한 글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계속 이 말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온 것 같기도 하다. 글 쓰는 이들을 좋아하고, 응원해주고,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어떤 버팀목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겨우 27쪽밖에 안 되는 소설 한 편에 담겨있는 나의 삶의 일부를, 그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업하는 동안 안전하게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텅 비어있는 11월은 다른 것으로 채웠다. / 2017년 동안 내가 썼던 글 목록.

그런 의미로, 나는 결국 11월 달력을 채우지 않았다. 원래 무슨 일을 했는지 집착적으로 기록하는 편이지만, 나는 일상이 비어있는 그 달이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하루는 무언가로 가득 차는데, 그냥 이것만큼은 빈 공란으로 놔두고 싶었다. 먼 훗날 그 시간을 떠올려도, 무엇을 했는지 잊지 않을 자신 있었다. 어차피 그때 한 일은 딱 하나뿐이었다. 글쓰기. 내가 가진 시간, 노력, 열정을 모두 쏟아부은 시간은 이미 몸이 기억하기에 상관없었다. 비어버린 달력의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게 와서 나를 채워줬음을, 그렇게 조금 더 견고한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느꼈다.


다 쓰고나서 볼 때마다 늘 뭔가 알 수 없거나 그런 묘한 기분.


제가 작가님의 울타리잖아요.


2017년의 모든 글쓰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12월 말. 무기력과 공허함을 핑계로 약 2주간 늘어져있다가 송년회에 참석하러 안전가옥에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쏠이 옆에 앉았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다 그녀는 '제가 작가님의 울타리잖아요.'하고 말하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려서 '내가 늘 무의식 중에 생각하던 것을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으로 그걸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고, 그제야 내가 회고전에서 말했던 ‘울타리’가 내게 어떤 의미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어떤 청춘의 일부는 이 곳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안전가옥을 생각할 때면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기꺼이 이전의 경험들을 스스럼없이 말해주며 따뜻하게 도와준 사람들. 수 천 권의 책들과 책장, 각종 인테리어도 채워지지 않는 라이브러리를 가득 메운 것은 결국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그 마음들이 모인다면, 분명 어떤 것은 지켜질 것이다. 적어도 무언가 쓰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사람의 마음 하나쯤은 지킬 수 있다. 서로가 울타리가 되어 좀 더 견고 해지는 사이 - 어떤 청춘의 일부는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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