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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Aug 15. 2018

[3월] 분노와 환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언제 닥칠지 모르는 무기력에 잠식당하지 않고 살아남야 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것 같은 내일.
변하지 않는 하루 속에서 시간만 간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2월 중순쯤, 급격한 무료함을 느꼈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 앉아서 글만 써내려 가는 나의 하루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지겹게 느껴졌다. 내 글 속의 서사는 너무나 다이내믹한데, 캐릭터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는데 - 정작 그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나는 책상 앞에 꼼짝없이 앉아서 타이핑만 하고 있다니. 


내 세계의 전부.


지루함 속에서 방송국 PD로, 축제 기획가로 살았던 기억들이 요동쳤다. 매 시간 유동적이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충돌하고 폭발하며 목표점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던 날들. 그 시절의 생동감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오직 나와 글자만 있는 적막 앞에서 수도 없이 되물었다. 이게 정말 내게 맞는 일일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것 같은 내일 - 변하지 않는 하루 속에서 시간만 간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문을 열고 나가면 허무함이 몰려왔다.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무료함이었다.


작업실에서 글만 쓸 때는 괜찮았다. 그때는 외부와 격리돼서 내가 쓰는 글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니까. 문제는 집에 돌아갈 때였다. 작업실 건물을 나와, 마당에 깔린 억새풀을 지나, 커다란 철문을 건너 어두운 골목길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급격한 허무함이 몰려왔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무료함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일상으로.


나의 하루를 다른 존재에게.


하루 종일 글만 쓰다니! 작가로서의 나는 오늘 하루 정말 잘 살았는데, 이야기도 만들고 즐거웠는데 - 그런데 그냥 나는? 내 하루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의 일상을 몽땅 다른 존재로 쏟아버리는 느낌. 울적함에 울고 싶고 (울지는 않는다.) 골목길에서 소리 지르고 싶고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술에 진탕 빠지고 싶을 정도로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일탈을 하거나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서 어디로?


그래서였을까? 3월은 너무나도 다이내믹하였다. 나의 불평불만을 신이 접수하고 '옛다'하고 다 던져버린 것 같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나의 3월은 1년처럼 길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사건들이 터졌다. 첫 번째는 사회적 이슈, 두 번째는 인간관계 이슈, 마지막은 - 바로 나였다. 




분노와 환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3월 초, 고발과 폭로로 미투 운동이 시작됐고, 이는 당연히 현재의 페미니즘과 인권신장, 평등을 향한 전초전이 됐다(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당시 나는 뉴스를 보며 한 명의 인간으로서 충격을 받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내가 지금 쓰는 글이, 과연 의미 있는 행위일까?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소재, 내 글이 정말로 사람들 - 그리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은 아닐까? 뭔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이 찾아왔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게 의미있는 행위일까?



글을 쓴다는 행위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결국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사람.


그 당시의 나는, 내가 맞닥뜨린 여러 상황들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 시스템과 구조는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등등.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방면에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한테 일어나지는 않았으니 행운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특히 작업실에서 만난 한 사람이 '왜 다들 불편하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피해자들은 왜 이제야 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하게 말하는 것에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적어도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하고 분노한 것이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작가는, 글을 쓴다는 행위는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 하고, 타인을 공감하려는 노력이잖아? 모든 상황을 가능하다고 설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것 아닌가? 결국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자기 위주로, 자기만 아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다른 상황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듯,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하나도 없으면서 - 도대체 어떻게 글을 쓰겠다는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가진 감정들은 분노와 환멸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온몸이 분노와 환멸로만 가득 찬 것 같았다. 이런 경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당연히 잠은 잘 못 자고, 근육이 굳고, 열이 오르고 자주 아팠다. 스트레스성 화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다. 그렇게 2-3주쯤 지났을까. 진짜 현실과 부딪혔다. 나는 매 달 한 편의 소설을 쓰고 합평을 받는데, 3월에 써야 할 글을 하나도 못 쓴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3-4일을 꼬박 밤을 새웠지만, 목표했던 중편소설은 미완으로 끝났다. 이미 스트레스 때문에 체력이 바닥나버려서,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바닥에 누워서 머릿속으로 다음 구절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에서 분노만 하느라 정작  내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놓쳐버렸다. 



중요한 게 뭐지?


내 글을 지켜야 나를 지킬 수 있고, 남도 지킬 수 있다. 


그 글은? 망했다. 아주 된통 깨졌다. 피드백을 듣는 내내, 진짜 보이지 않는 복싱선수가 양쪽 볼을 강하게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정작 내 일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면서 방구석에 드러누워서 '이 사회는 왜 이러는 거야?'하고 있었다니.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하면서 해야 하는 건데. 나 홀로 무기력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린 건 아닌지, 너무 부끄러웠다. 이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 거야?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글에 집중했다. 또다시 스무 권이 넘는 책들을 쌓아놓고 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방에서 나와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서, 다시 한 문장씩 썼다.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세 문장만 쓰고 끝나기도 했고, 다른 날에는 싹 바꾸고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썼다. 내가 속한 사회를 잊지 않았고, 멀어지지 않았다. 다만, 내 하루에 충실해야 다른 기회들도 온다는 사실을 다시 알았을 뿐이다. 



또 다시 원점, 시작점, 끝점.


어디든 두 발 딛고 설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글 쓰는 사람은 악마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러한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감정이 앞서서 또다시 괴로워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감정들과 상황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글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전까지는 표현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옮음과 그름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력을 갖춰야한다.


내 글은 내가 지켜야 한다. 


내가 지금 두 발 딛고 서있는 곳은 폐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무기력에 잠식당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다음 문장을 적어야 한다. 그게 내 글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방법이고, 언젠가는 남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으며. 


언젠가는 빛으로. 




보영(Bo). 네가 결정해, 내가 도울게. 

All copyright reserved @ dailybo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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