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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Sep 09. 2018

그냥 헤어지는 것뿐이야.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랜만에 모임에 갔다가 U를 만났다. 평소에 연락을 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만나니 반가웠다. 시끌벅적했던 모임이 어느 정도 파하자 그가 내 옆자리로 와서 L의 안부를 물었다.


"L은 잘 지내요." 


나의 말에 U는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그는 헤어짐에 L의 잘못은 없으며, 자신이 L을 너무 오랫동안 혼자 놔둔 게 잘못인 것 같다고 말했다. 희미하게 미소 짓던 그 모습에 나까지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얼만전에 U 만났는데, 너 잘 지내냐고 물어보더라."


몇 달 뒤 만난 L에게 라고 말했다. L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무엇도 묻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이 흐른 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L이 먼저 U의 이름을 꺼냈다. 사실 그 사람한테 고마운 것이 많다면서.


“그때 나는 모든 게 다 처음이라서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 이별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혼자 할 말만 보내 놓고 숨어버렸어. 그 후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언젠가 만나면 말해주고 싶더라고. 당신은 그때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L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과연 나도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준 존재로 기억되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한 다음에 헤어졌을까? 그런데도 왜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게 되는 걸까. 


가장 마지막 연인을 떠올랐다.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왜 헤어진 거지? 


이별 후에는 눈을 뜬 순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지 고민했었다. 우리는 왜 헤어지는 건지,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정말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지. 답이 없는 질문들을 끝없이 퍼부으며 괴로워하다가 울거나, 혹은 울다가 잠이 들었던 날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인간은 쉽게 죽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일 년, 이년 혹은 오 년 정도 시간이 흐르니 문득 떠오른 옛사람의 얼굴에 "그런 사람을 만났었지."하고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방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마치 모든 게 내 잘못이라서, 나 때문에 헤어지는 것 같은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현실이 찾아온다. 힘들었던 이별은 하나의 과거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현실에서는 홀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길 수도,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며 온갖 쓸쓸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다가도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헤어지는 것뿐이다. 그때 서로에게 최선을 다 해주었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그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게 아닐까.


이 말을 과거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다. 이별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우리는 이제 상대방의 과거의 일부가 돼야 하는 것뿐이라고.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한 때 일상의 궤적이었던 어떤, 순간으로. 그렇게 우리는 그냥 헤어지는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얼굴도 희미해질 날이 올 테니까 이제 그만 울고, 이불 밖으로 나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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