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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Sep 25. 2018

시간이 지나도 나를 붙잡는 질문들

나는 왜 가벼운 질문에도 머뭇거리고 고민했을까.


시간이 지나도 나를 붙잡는 질문들


지난주 오후, 도서관에서 공모전에 낼 시나리오 트리트먼트를 작성하는데 D가 심심하다며 말을 걸었다. 뭐하냐고 묻기에 공모전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 쓸 소설의 아이템 이야기를 꺼냈다. 반응이 영 시원찮아서 별로냐고 물어보니까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는 이런 쪽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라는 말에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들어도 한 번에 훅 파고들어야 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다.      


[D]  이런 건 그냥 취미로 하고 취직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내보면 안 돼?

[Bo]  취직......

[D]  그냥 올인 안 하고 하면 더 잘될 수도 있을 거 같아

[Bo]  그런 말 종종 듣지 워낙 불안하고 리스크가 크니까

[D 아니 또 은근히 올인 안 하고 취미 삼아하면 더 잘되기도 하더라고

[Bo] 그런 게 있긴 해. 하나만 하면 너무 매몰되는 거

[Bo] 오히려 맘 놓으면 잘 되는 거

[D] 관련 쪽으로 취업하면 되니까~ 사람인 보면 가끔 나오던데 스토리 작가 이런 거

[Bo] 경쟁률도 경쟁률이지만 대우가 너무 안 좋아서 ㅜ


D는 금방 수긍을 했고 우리는 바로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몇 분 후, 자연스럽게 대화는 종료됐고 나는 다시 쓰고 있던 트리트먼트를 이어 쓰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쉽게 이어갈 수 없었고, 친구의 질문만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런 건 그냥 취미로 하고 취직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내보면 안 돼?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기대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 그러게. 정말 구직 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나를 자아성찰로 빠뜨린 도서관 컴퓨터실 책상 창밖 풍경. 



어물쩡 거리며 내놓은 말들이 죄다 핑계 같아서


오늘처럼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내 상태를 자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상대방이 가볍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각성은 주로 찝찝함과 떨떠름 후에 찾아온다. 나는 어떤 질문에는 망설임 없는 말투로 확신에 차서 답하지만, 어떤 질문에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린다. 마치 두뇌가 움직임을 멈춘 듯 아무런 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주저하다가 내놓는 말들이 죄다 핑계 같아서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쓰고 있던 트리트먼트를 저장하고 일기장을 열었다. 나는 왜 이 대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지금 찝찝한 상태가 되었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죽죽 써 내려갔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꺼내면서 속을 비워갔다. 진심을 덮어놓은 핑곗거리들이 걷힐수록 마음이 개운해졌다. 직면한 진심은 역시나, 아주 사소했다. 


덮어놓았던 불안함을 스스로 꺼낸 순간


그냥 올해까지는 글만 쓰고 싶어. 

이 말을 하는 게 왜 어려워졌을까? 나는 왜 내 진심에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마주한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목표했던 일들은 거의 다 성취하면서 살았기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성과가 미비한 분야는 처음이었다. 일단 하겠다고 선택하면 인생 거는 스타일이라서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글만 썼다. 


그러다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계획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조급함을 느꼈다. 이번 해도 성과 없이 그냥 보내면 어쩌나,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30대 중반이 되면 어쩌나, 이러다 나만 도태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졸업 후 결혼, 육아, 가정,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표면적으로 아무 성과물이 없는 내 상태를 인지하는 게 괴로웠다. 불안함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무너질까 봐 덮어놓고 모른 척했다. 내가 책임지고 가져가야 하는 감정들에 무심했던 탓에, 나는 친구의 질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올해까지만 버티고 싶어.  

며칠을 나를 붙잡았던 친구의 질문에 이제 나는 담담하게 답한다. 올해까지는, 내 통장 잔고가 사라질 때 까지만은 글만 쓰고 싶다고. 


지금 내 통장에 100만 원이 있다. 친구들에게 추석빔을 보내고 가족들에게 소소하게 밥도 산 뒤에 마지막으로 남은 돈이다. 50만 원 정도는 여행 경비로 나갈 것 같은데, 여행을 가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돈을 쓸 것 같다. 추워지기 전에 고향에 내려와서 가만히 글만 쓴다고 계획하면, 한 달에 10만 원이면 올해는 충분히 버티겠지. 언젠가 돈이 한 푼도 없었을 때도 두세 달은 버텼으니까.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의 내 삶은 그저 버티기였으니 100만 원으로 1년도 더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올해 까지만,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더 버티고 싶다. 

내가 원할 때까지, 내가 끝내고 싶을 때 까지는 계속 고집부리고 싶다.

  ㅡ 그 후에는, 그때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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