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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an 13. 2019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작가

전문성이란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가 아닌 객관적인 결과물

“넌 나중에 미팅 나가도 이럴래?”


학교 앞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나를 친구가 놀렸다. 당시 졸업반이던 우리는 카페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어느 회사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 불쑥 꺼내는 말이 넌 나중에 회사 가서도 주스나 마실 거냐는 걱정 반 놀림 반이라니.   


“생각해 봐. 다들 커피 시키는데, 너 혼자 ‘오렌지 주스요’ 이럴 거냐고.”

“핫초코나 아이스초코도 있거든?”

“예예, 많이 드세요.”


친구의 말에 발끈해서 답했다. 지금 커피 마신다고 초코 무시해? 하지만 속으로는 긴장이 됐다. 직장인이 되면 정말 커피만 마셔야 하는 걸까? 나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는데. 심장이 빨리 뛰는데 어쩌지? 진짜 주스 마시면 뭐라 그러는 걸까? 핫초코 달라 그러면 안 되는 걸까? 멋있게 아메리카노 시키고 먹는 척해야 하는 걸까? 


취직 전 고민이 어떻게 해야 커피를 못 마시는 상황을 벗어나는지 연구하는 거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여간 깜찍하고 귀여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전혀 잡힐 생각 없는 시간을 타고 30대가 된 나는 남들이 ‘아-아’를 부를 때 다른 말을 외친다.


“저는 아이스 초코요.”  


‘지금 뭘 시키는 거야?’라는 타인의 눈빛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얼굴과 낮은 목소리, 멋있는 말투는 필수다. (왜, 뭐, 그래서 어쩔 거야.). 



을매나 맛있게요.


한 번은 만날 때마다 한 손에는 담뱃갑이, 다른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던 대행사 실장이 물었다.


"작가님은 어떻게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세요?"

"그러게요. 허허."


실장님은 왜 핫초코 안 마시세요? 되물을 수도 없고 참. 


"제가 아는 작가들은 커피로 연명하고 담배로 숨 쉬는데. 이참에 한 번..."


그가 담뱃갑을 내밀면 나는 으-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실장은 능글맞게 웃고 테라스로 갔다. 회의하던 사람들은 전부 그곳에 있었다. 카메라 감독, 대행사 팀장, 대행사 직원까지 모두.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흡연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놀랐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쉬는 시간임을 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미친 스케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깐 빠져나오는 유일한 자유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나도 종종 흡연자들 틈에 끼어서 담배 연기를 들이켜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시지도 못하는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플라스틱 컵에 맺힌 물방울만 바라보다가 미팅이 끝나고 세면대에 모두 쏟아부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를 못 마시니까 다른 음료를 시키고, 담배를 안 피우니까 가만히 자리를 지킨다. 커피를 안 마셔도, 담배를 안 펴도 할 일을 제대로 끝내면 사람들은 다시 불러준다. 미팅 때마다 아이스초코를 시켜서 담당자들을 놀래 켜도 일만 잘하면 다시 찾아준다. ‘작가님, 저희 다음에도 같이 일해요.’ 그리고 가끔 익숙하게 물어봐 준다. ‘작가님은 커피 안 드시죠?’ 


전문성이란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받는 결과물이다. 약속한 시간 내에 좋은 퀄리티의 결과를 창출한다면, 내가 아이스초코를 마시든 우롱차를 마시든 누구도 신경 안 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핫초코를 마시고, 가끔 많은 양의 차를 마신다. 여전히 커피만 쏙쏙 골라낸다. 다수의 선호도와 벗어나는 나의 취향은 상관없이, 언제든 같이 일하고 싶은 전문가로 기억되면 될 자신 있으니까.  


그나저나 회사원이라면 커피(아-아)지, 하는 인식은 어디서 나온 걸까?

'커리어우먼이라면 핫초코'지. 이게 더 멋있는 것 같은데? 


- 그래도 솔직히 가끔 외로우니까 누구든 좋으니 옆에서 거들어 줍시다. 아, 저도 핫초코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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