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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an 13. 2019

100일의 기적

일련의 시련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들

“나 지금 택시에서 내렸어. 골목길로 들어가?”


아직 5월인데 2시의 서울이나, 4시의 원주는 하나 같이 더웠다. 셔츠 목덜미를 펄럭거리며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앞쪽에서 ‘여기!’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코트를 입을 때만 해도 불룩했던 친구의 배는 밋밋해졌다. 서울 음식이 먹고 싶대서 우리가 자주 갔던 음식점의 샐러드를 사 왔지만 그녀는 내가 가져온 장난감 박스에 더 관심을 보였다. 장난감의 주인은 거실 한복판에 누워 팔과 다리를 열심히 휘젓고 있다.


"3일 뒤에 100일이지?"

"응. 언니 생일이 100일이야."

"신기하다."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움직이니 눈동자가 따라온다. 아기의 손바닥이 나의 검지 첫째 마디를 감싸는 것으로 첫인사를 했다. 아기는 쉴 새 없이 버둥거리는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감이 안 잡혔다. 그렇게 약 한 시간 가량 아기의 전위예술을 구경하고 있는데 친구가 입을 뗐다.


"요새 자꾸 저래. 몸을 뒤집고 싶은 것 같은데, 아직은 안 뒤집어져."


아기는 다리를 왼쪽으로 크게 흔들었다. 다리만 움직이고 몸통도 기우는데, 중심축인 머리는 꿈쩍도 안 한다. 그 반동으로 일자로 누워있던 몸은 사선이 됐다. 아기가 얼굴이 벌게져서 울음을 터트리려고 하자 친구가 손으로 등을 살짝 밀었다. 아기는 겨우 몸을 뒤집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난 지금 100일의 기적만 기다리고 있어."

"100일의 기적?"


친구는 다시 돌아눕지 못해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1~2시간가량으로 수유와 기저귀 갈기, 자기와 깨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래서 산모들의 하루는 아기의 패턴의 맞춰서 12번은 더 재우고 먹이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차 한 번에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눈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진단다. 그러다 100일쯤 되면, 생활습관이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산모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100일의 기적’이라고 한다.


"정말 100일의 기적이 일어날까?"

"나도 몰라. 그냥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지, 일어날 거라고. 그나저나 글 보여준다며?"

"가져왔는데, 차마 못 보여주겠어."


퇴사를 한 지 반년이 지났다. 1년 동안은, 글만 쓰고 싶었다. 그런데 5월 한 달 동안 혓바늘 돋아가며 쓴 글은, 정말 친한 친구에게조차 보일 수가 없었다. 원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30살은 7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통장잔고가 버텨줄까? 친구들은 모두 과장으로 승진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나를 무어라고 소개해야 할까? 이러다 30대의 나는 글쓰기에 실패한 백수로 손가락질받는 걸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의심 속에서 생일이 됐다.




<생일 축하해!>

<니 아들도 100일 축하!>

<진짜 100일의 기적이 일어났어!>

<뭔데? 이제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아니! 오늘 아침에 결국 몸을 뒤집었어!>


친구의 말에 힘주느라 빨개지던 얼굴이 떠올랐다. 97일째에도 내 눈앞에서 버둥거리던 아기는 100일째 되는 날에도 몸을 뒤집으려고 열심히 버둥거렸겠지. 태어난 지 100일째 된 아기가, ‘목표’라는 단어, 혹은 ‘노력’ 혹은 ‘꿈’이라는 단어를 알까? 어른들도 찾기 힘든 답인데, 아기라고 알 리가 없다. 다만 늘 그랬듯 열심히 버둥댔을 것이다. 뒤집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뒤집기 위하여 노력했다. 아기는 그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들이 쌓여서 결국 스스로 몸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겪는다.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다. 오늘의 실패에 괴로워하고 악을 쓰다가도, 내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 글을 쓰는 세계에서, 나는 신생아나 다름없다. 피 터지게 노력해서 성장해야 하는데, 내 실력에 답답해만 하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걸었던 사람처럼 행동한 셈이었다.


몸을 뻗대고 휘두르는 몸짓들이 사실은 아기에게는 힘을 길러주었듯, 나 역시 쓰고 또 쓰다 보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태어났을 때도 했는데, 지금이라도 못 할 리가 없다. 갓 태어난 이 세계에서, 다시 한번 100일의 기적을 보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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