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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an 13. 2019

관심은 사랑하지만 관여는 사양합니다.

애정이 느껴지는 관심과 불쾌함을 유발하는 관여의 차이점

출산예정일을 넘긴 순간부터 H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회사 번호로 자꾸 아기 낳았냐고 연락 와서 미칠 것 같아.”

“뭐? 너무 끔찍해.” 


자고로 회사 전화란 무엇인가. 업무 때 사용하는 회선으로, 주로 누군가를 닦달하거나 보챌 때 쓴다. 회사를 벗어난 후에도 마주한다면 온갖 스트레스와 병마가 몰려올 수 있는 위험한 숫자다. 


 “10년 동안 일만 했는데 휴직했을 때라도 좀 놔둬야 되는 거 아니냐.”


그녀의 말에 퇴사 후에도 전화를 하던 전 직장 동료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안부 인사인 줄 알고 반가웠다가 일에 대해서 물을 땐 조금 씁쓸했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좋아서 전화한 건 아닐 테니까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그런 전화가 아니라면 퇴사 후에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나눌 사이가 아니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니 그때도 회사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02로 시작하는, 이제는 잊어먹은 그 번호가. 


“이런 일이 흔한가 봐. 나 어제 산모들 있는 카페에서 읽었는데, 자기 출산 예정일 하루 지나자마자 하도 연락이 와서 카톡 프로필에 ‘재촉하지 마세요. 아직 안 나왔어요.’라고 써놨대.”


D의 말에 H는 “내가 쓴 거 아니다.”라고 말하더니 크게 웃었다. 그녀는 너무 공감되지만 카톡 프로필에 써놔도 사람들은 무시하고 연락을 할 거라도 말했다. 하긴,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이면 일단 전화를 하지 않았겠지. 


“심지어 출산예정일에도 부재중 전화가 왔었더라고.”


진지하게 출산예정일에 전화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설마 아기 낳고 있는데 전화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기를 낳다가 휴대폰이 울려서 잠깐만,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달라고 하는 H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런 장면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너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너 아기 낳는 게 그렇게 빅 이벤트야?”


“관심이 아니고 심심한 거지. 출근하면 아침부터 얼굴 보자마자 결혼 언제 하냐고 물어보는 곳인데 뭐. 그냥 다른 사람의 인생사가 심심풀이 안주라니까.” 


“나도 그 말 듣는 거 너무 싫었어. 진짜 그 얘기 듣기 싫어서라도 결혼해버리고 싶더라니까. 근데 나는 심지어 퇴사했는데도 연락 와. 결혼했는데 뭐 좋은 소식 없냐고. 오지랖이 너무 심해.”  


D의 말에 O 부장이 떠올랐다. 정년퇴직을 2년 앞둔 O 부장은 회사에 아침마다 나를 불러서 ‘여자는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최고다.’에 대해 약 40여 분동 안 늘여놓았다. 나는 그때마다 책상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펜이나 노트, 전화번호부 숫자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카페에서 틀어놓은 BGM처럼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가끔 ‘예’, ‘그렇죠.’하고 영혼 없이 응답했다. ‘어떻게 이런 무례한 생각과 행동을 하시는 거죠? 이런 고지식한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거죠?’라고 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하며 이야기만 더 길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널 위해 하는 말이다.’라고 했지만 내게는 불필요한 참견일 뿐이었다.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되는데.



  듣는 사람이 애정이 느껴지면 관심, 불쾌하면 관여 


사람들은 흔히 관여를 관심으로 착각해서 수많은 참견을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까지가 관심이고 어디서부터가 관여일까? 답은 화자가 아닌 청자에게 있다. 상대방이 애정을 느끼면 관심, 불쾌함을 느끼면 관여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는 관심이라고 생각된다고 해도, 타인이 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관여다. ‘널 위해서’라는 생각도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일 뿐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상대방이 듣기 싫다고 생각되면 하지 말아야 한다. 굳이 말하는 것은 내 욕심이고 자기만족이다. 


근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건 잘 들어주던데? 물론 듣기는 잘한다. 노련한 사회인으로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듣고 있는 척할 뿐이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도, 더는 마주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관심은 사랑하지만 관여는 사양합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안정감과 행복감의 근원이다. 그러나 관심이 관여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생색내기와 다르지 않다. 내가 너에게 관심을 줬으니, 이 정도는 간섭해도 되지? 절대 안 된다. 그저 무슨 일이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한다면, 그때 말해주면 된다. 물어보지 않은 말은 하지 말고, 답답해도 물어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의 관여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얼마나 멋있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옆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더 멋있다.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 관심은 사랑하지만 관여는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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