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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Dec 30. 2022

면접장에서

현실직시를 하려면 면접장으로 가세요.

코로나 역학조사원 5명을 뽑는 기간제근로자 면접장에 왔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만 10명. 이미 20여 명 정도는 면접을 치렀고, 나는 그다음 20여 명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나는 뒷번호니까.


원서를 지원하고 다음 날 서류가 통과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이틀 뒤인 오늘이 면접날이다. 보건소와 구청은 아직도 방문접수를 해야 해. 일일이 지원번호를 기입하고, 서류를 갖다 주지. 덕분에 오랜만에 경력증명서를 떼느라 옛 회사에 연락을 했다. 이름과 기간, 메일을 말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끊는 단조로운 연락. 그리고 메일로 도착하는 경력증명서. 이런 단순한 일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별 거 아닌데. 앞으로는 경력증명서 뗄 때 아무 감정 없이 잘 연락할 것 같아. 


면접장에 왔더니 서류를 낸 사람은 다 붙은 거 같다.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걸까? 이대로라면 나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보다 공모전에 붙는 게 더 수월할 것 같다. 지금 계약한 글을 마저 쓰는 게 생활비를 버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모전이 아무리 치열하고 소설가로 사는게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제는 그게 더,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오히려 그런 게 더 맞겠구나, 싶은거야.


왠지, 이제 와서 지금 내가 잘하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왜 면접장에서 드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이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면접장은 현실이다. 최악의 구직난 속에서, 두 달이라도 일을 구하려는 구직자들의 장. 우리 엄마 또래도 있고, 20대 초중반도 있는 것 같고. 나이대와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일을 구하겠다고 모였다. 나처럼. 


이곳이 아니면 다른 걸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나약한 생각을 후려치는 곳. 현실은 치열해. 그런데 나이브하게, 한 번 해볼까? 돈을 벌어볼까? 경험을 쌓아볼까? 이렇게 접근한 사람은 현실을 깨닫고 겸허해졌다. 


현실직시를 하려면 면접장에 가야한다. 내가 얼마나 착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거든. 


버스에서도 나는 자기소개를 고민했다. 대체 뭘 말해야 하지. 구작자였을때, 멋있게 준비했던 자기소개는 빛을 바랬다. 나는 더이상 구직자가 아니니까. 그냥 내가 소설가라고 밝혀야 할까?(원서에 이미 썼음) 내가 프로젝트형 인간이라고 말해야 할까? 보건소와 익숙하고 올해는 보건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해야 할까? 


면접장에 와서보니, 그 고민이 다 쓸모 없어졌다. 무슨 말을 하든, 누가 뽑히든 그것은 운이다. 순전히 운. 한 달에 240만원씩, 두 달동안 일하면서 500만원가량 벌 수 있는 운. 그 운이 나랑 가깝지 않다는 것을 면접장에 와서 단번에 느낀다. 


아무래도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버티기 너무 힘들다고 했을 때. 중견작가 한 분이 그래도 좀 버티라고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거 같은데, 일하면 그 시간이 아깝다고. 하지만 나는 더는 버틸 수 없는 걸. 돈 없는 비참함에 나를 더 내어주고 싶지 않는 걸. 이제 새 집으로 이사도 가야하고, 이사가면 생활비도 내야 하고 동생들은 돈을 버는데 나만 안 낼 수도 없고...


이런 현실들. 나만 안 할 수도 없고, 비참하고, 하는 현실들이 2022년 12월 30일 오후 2시. 나를 보건소 기간제근로자 면접대기장으로 오게 만들었다. 어떤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더 뻔뻔해지지 못하고, 원서를 쓰고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고 보건소 지하 1층 면접대기실로 왔다. 


환상이 깨지자 오히려 겸혀하고 평온해진다. 사실 난 계속 버틸 수 있다. 이미 12월에도 2주 간 0원으로 버텼는걸. 집에서 밥먹고, 도서관에서 책보고. 이 시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한 걸. 그렇지만 나는 돈을 벌고, 현실감각을 좀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생각했다. 더는 못 버티겠는걸, 하고. 다음 달 교통비는 내야 하잖아. 이미 7만원이 넘게 나왔는걸.


순전히 운이다. 나는 코로나 역학조사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다. 50명 중 1명이 된다면, 다음주부터는 보건소로 출근을 하겠지. 50명 중 45명이 된다면, 나는 또 도서관에 가겠지. 책에 둘러쌓여서, 하루에 책을 몇 권씩 읽어치우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를 하며 계속 동면상태를 유지하겠지.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상태에 최선을 다해야지. 별 거 아닌 일들이다. 면접장에 와서 다행이다. 아니면 몰랐을거다. 이런 현실감. 이런 세상. 이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그렇지만 아마 나는 당분간 동면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면접장에서 자기소개서 준비 안하고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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