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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Jan 10. 2023

카페인 청정지대가 된 한 인간의 절규

커피를 콸콸 들이붓는 당신은 아.십.니.까!!


“너는 이런 거 마시면 안 돼.”


매일 밤, 엄마는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엄마는 자기 전에 꼭 한잔 씩 커피를 마셨다. 엄마의 힐링시간. 집에는 커피향이 풍겼다. 나는 엄마가 마시는 커피를 탐내지 않았다. 커피는 어른들의 ‘것’이니까.


내게는 아이들의 ‘것’이 많았다.

ㅡ 몽쉘, 초코파이, 오예스, 우유, 초코우유.


아니, 초코가 이렇게 맛있는데 커피를 탐낼 이유가 있나? 물론 ‘다 클때까지 마시지 말라’던 엄마의 말도 한몫했다. 나는 부모님 말씀을 꽤 잘 듣는 학생이였으니까.


그나저나 어른이 되면 커피를 마셔야 하는걸까? 나는 이렇게 먹는게 더 맛있는데. 몽쉘을 우유에 찍어먹으며 오물거렸다. 빅파이도, 초코파이도. 음, 이맛이야.


20살이되도 딱히 커피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먹지 않았기에, 굳이 먹지 않았다. 엄마가 안 좋다고 했으니까, 딱히 좋은 건 아니겠지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자기 커피를 마셔보라고 했다.


ㅡ 맛있어, 마셔봐.


커피를 마시는 친구 표정이 너무 황홀해서 궁금해졌다. 호기심에 친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ㅡ 이 거짓말쟁이....


써. 너무 써.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맛있다는 친구의 말에 항의했다.


이렇게 쓴 걸 왜 마시는 거야? 이렇게 쓴 걸 엄마는 왜 밤마다 마신 거야?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날은 밤에 한 숨도 자지 못했다.왜 이러지?... 이상했다. 피곤한데 눈만 감고 있을 뿐, 잠에 들 수 없었다.


ㅡ 설마 불면증?!


게다가 심장이 유난히도 두근거렸다. 귓가에서 뛰는 것 같았다. 왜 이러지?


ㅡ 설마 심장병?!


20살에 생의 최대 위험을 마주한 나는 곧 죽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카페인 부작용임을 알았다.


그렇다. 엄마가 언제나 너는 나중에 마시라던 커피를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나의 취약점에 커피를 들이부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21살인가 22살인가 토익 학원에서 어떤 언니를 만났다.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우리는 같은 스터디 멤버였다. 내가 종종 언니에게 뭔가를 알려주었다. 어느 날, 언니는 고맙다며 레쓰비 파란색 캔커피를 내게 주었다.


ㅡ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엄청나게 고마운 티를 냈지만, 속으로 매우 난감해졌다. 이거 마시면 일주일동안 잠 못잘게 뻔했다. 일단 레츠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기숙사에 가져가서 룸메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나와 대각선으로 내 뒤에 앉았고, 나는 언니가 몹시 신경쓰였다. 언니의 눈초리가 너무, 잘 느껴졌다. 그러니까, 책상에 올려놓은 레쓰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언니를. 어린 나이에 언니가 준 커피를 당장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이미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언니의 성의를 위해서라도, 나도 그들에 합류해야 할 것 같았다.....


ㅡ 딸깍.


나는 캔커피를 뜯었고, 한 모금씩 마셨다. 솔직히 캔커피 달달하고 맛있지. 더위사냥 같지. 커피우유 같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언니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커피를 마실 수록, 언니는 마치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사준 보람이 있군!’ 하면서. 내게 친절을 베푼 자신을 칭찬하면서.


ㅡ 쿵쿵쿵쿵쿵!!!!


빈 캔을 찌그러트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던 그날 밤. 태어나서 처음으로 쉬지 않고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이러다 고장 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아침까지 쿵쿵거리지?


각성효과는 어마무시했다. 나는 잠을 못잤다. 정말 너무 자고싶었다. 양을 세도, 온갖 숫자를 세도 정신을 또렷해졌다..... 점점 더 양은 불어나고... 나는 세계 최대 양목장 주인이 됐지만 잠에 들 수는 없었다... 아주 슬픈 이야기....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캔커피를 마신 이야기다. 그 후로 캔커피는 건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언니도 사라졌다. 그러고보니 어디로 갔지?!






그러니까 그 후로 내가 건드는 것은 죄다, 초코음료들. 카페는 내게 핫초코와 아이스초코로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ㅡ 너 회사 가서도 핫초코 시킬래?!


어느 날, 초코음료만 시키는 날 보고 친구 한 명이 걱정했다.


ㅡ 남들 다 커피 시키는데 너 혼자 핫초코요, 할거냐고.


친구는 진지했다. 나도 심각해졌다. 미팅때 아이스초코 마시는 직장인은 못 들어본 거 같아. 어떡하지? 취업해야 하는데.... 커피 못 마시면 회사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어떡하지..... 내가 시킨 핫초코를 마시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음, 달다.


그러니까 폼이 안 난다는 거지. 후드티에 청바지 입고 아이스초코 시키는 건 괜찮아. 근데 정장입고 커피를 난 시킨다? 폼이 안 난다는 거지. 아이스초코를 시킨다? 분위기 팍 상한다는 거지.


ㅡ 그럼 난 어떡해.


고민에 대한 답을 내기도 전에 나는 사회인이 됐고, 클라이언트 미팅에 갔다. 그리고 모두의 눈이 집중한 가운데, 최대한 신중히 대답을 해야하는 시간은 매번 찾아오고야 말았다.......


ㅡ 작가님은, 아메리카노 드시나요?

ㅡ 아니요, 저는 아이스초코요.


그렇다!

나는 모두가 커피를 시킬 때, 나 홀로 아이스초코를 시키는 용기 있는 프리랜서로 자랐다.


뭐, 왜, 뭐가 어때서, 왜, 뭐.


이게 얼마나 용기있는 행위인지 아냐고요. 내게 묻지도 않은 커피를 받으면 감사인사를 하고 종일 들고다녀야먄 하고, 그러다 못참고 어느 날엔 쭈뼛거리며 손을 들고 ‘저는 아이스초코요.....’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큰 시련이 삶의 어귀를 지나갔는지, 카페인에 무감한 당신은 아십니까!


이제는 초코도 끊었더니, 붕어빵에 들어간 초코가루에도 잠 못자는 제 마음을 아십니까!


밤에 초콜렛 먹었다고 새벽 5시까지 잠 못이루는 이토록 카페인에 취약한 인간의 마음을 아.십.니.까.!


피곤한데 잠이 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까지 써야하는 기프티콘으로 사먹은 케익이 초코였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의 눈물(하품)을 흘리는 한 인간의 고통을 아ㅡ십ㅡ니ㅡ까!!


단지, 카페인이 극단적으로 심하게, 몸에 안 받는 거라고요. 이런 사람도 있다고요. 모두가 커피를 마시고 숙면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닷!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후... 잠시 호흡을 고르고.


카페인 청정지대가 된 한 인간이 목놓아 외칩니다.


ㅡ 아까 초코케익 한 조각 다 먹었단 말입니다아아아아아!! 초코는, 초코는 봐줘야죠!! 너무해!


눈물이 차오른다..... 지난 시간의 불면의 밤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홍차? 잠못자.

녹차? 잠못자.

커피? 잠못자.

밀크티? 잠못자.


잠못자! 못잔다고! 심장 쿵쿵쿵 뛴다고! 자고 싶은데 못.잔.다.고!


그런데 이제는! 저녁에 초코를 먹어도 잠 못자는 몸이 되고야 말았다. 이제는 내 몸이 카페인에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ㅡ 몸아, 혹시 카페인이랑 싸웠어? 싸워서 졌어? 분해서 이래? 그래서 날 안 재우는 거야? ... 초코랑은 화해해줄래? 아, 싫어? 그래...... 뭐... 정 그렇다면...





예전에 대행사 실장이 물었다.


ㅡ 작가님은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하고 어떻게 살아요?


그의 오른손엔 커피, 왼손엔 답배갑이 들려있었다.


미팅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나 빼고 테라스로 갔다. 한 손엔 커피,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괜히 시무룩해져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아이스초코 컵의 표면으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나 닦았다.


실장님. 전에 저보도 커피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어떻게 사냐고했죠. 이제 저는 초코도 못하고 술도 못 마십니다!


저는 이제 뜨거운 물에 얇게 썬 생강과 꿀을 넣은 생강꿀차를 마십니다!

청귤을 넣은 차를 마십니다!

뜨거운 차에 버터쿠키를 찍어 마십니다!

티타임이란 과자먹는 시간이란 걸 알아갑니다!

이래서 다들 티타임을 고집했다는 걸 알아갑니다!




카페인과 화학물질에 극도록 예민한 몸으로, 어디 한 번 잘 굴러가보겠습니다. 차와 과자를 흡수하며, 앗뜨뜨.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내가 잘 알겠어. 얼마나 민감하고 예민한지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해하고 잠 좀 자자. 나 좀 놓아줘. 이제 그만 재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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