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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Nov 11. 2017

잘 견뎌줘서 고마워, 당신의 30대를 응원해

젊음이라는 존재 자체로 반짝거리던 한 순간을 기억하기에.

10년이라는 시간의 힘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우리가 모두 대학생일 때 연합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시간 되는 사람들만이라도 만나자고 해서 세 명이 모였다.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자리었지만, 대화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벌써 10년을 알고 지냈기에 언제 만나도 편안했다. 그 시간 동안 꾸준히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부심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청춘의 한 시절을 같이 보낸 추억의 힘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같은 목표와 관심사를 가지고 열의를 불태우던 시간들. 20대 초반, 꿈과 열정 가득한 모습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갔다.


20대 대학생에서 30대 사회인으로


20대 초반에 만난 우리는 모두가 30대가 되었다. 바뀐 것은 나이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인 9년 차 오빠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한 살 어린 동생은 1년 전 언어치료센터를 개원했다. 대화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결혼, 육아, 일로 바뀌었다. 학점, 꿈, 연애를 이야기하다가 아이, 학군, 노후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니, 정말로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실감했다. 그 언젠가 함께 밤을 지새우던 캠프에서, 또는 스터디에서, 또는 종로의 어느 술집에서 열의에 띈 눈동자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생한데. 학생일 때 만난 사람들이 어느덧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됐다. 내가 알던 어린 사람들이, 예상했거나 또는 예상하지 못한 현실이 돼버린 '그'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올해 초 언어치료센터를 개원하고 원장님이 된 동생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막막함에 슬럼프도 겪고 이리저리 방황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오빠는 우리 둘 다 새로운 일을 한다고 감탄했지만, 회사를 다닌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말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오빠도 새로움과 난감함의 과정을겪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년 쯤 지나니 이제야 감이 잡힌다는 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기를 (어떻게든) 견디고 지금에 이르렀기에


서로에게 찾아온 '그' 시기를 (어떻게든) 견디고 지금에 이르렀다. 새로운 길을 가면서 좌절을 맞닥뜨렸지만, 인내하고 버틴 끝에 희열을 느끼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비슷한 궤적으로 그려온 경험 덕분에 아마 서로에게 잘했다, 잘 견뎠다, 하고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화의 주제는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뜨겁고 또 따뜻했다.


그 시기를 지나간 오늘은, 이미 다른 날이 되었다.


바쁜 동생을 먼저 보내고 오빠와 은행잎 쌓인 거리를 걸었다. 오후 햇살은 밝았고, 노란 은행잎은 가을의 결정체를 이뤘다.


"솔직히 나도 회사원 체질은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적응하고 있는 거야. 9년 지나니까 이제야 편해졌어.  나는 지금이 제일 편한 것 같아."

"자기가 선택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죠. 저는 이제야 비즈니스랑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이 잡히는 것 같아요. 1년 동안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겪고 이제야 감이 좀 잡혀요. 처음엔 너무 막막해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결국 이게 제일 재밌어서 하게 되더라고요. 이거 아니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게 중요한 거야.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거."

"사실 지나고 났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중간에 포기했으면 또 다른 하루를 살고 있겠죠."

"맞아. 10년이 지나고, 우리가 이제 사회의 한 축이 된 거지."


머릿속으로 나의 올해가 지나갔다. 처음이라 신이 나서 글만 쓰던 1월, 슬럼프에 허덕이던 6월, 과로에 허 쓰러져가던 여름, 그리고 작업실에 파묻혀서 소설만 쓰는 지금. 10개월 사이 절망감과 고통스러움에 허덕거리던 시간이 너무 많았는데 -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인생을 집어삼킬 것 같던 고통이 단지 그때뿐이었다니. 인내의 끝에는 너무 눈부시게 빛나는 가을 햇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 (오래전 부터 지켜봤던) 당신의 30대를 응원해.


비로소 과거라는 시간은, 단지 지나간 것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견뎌낸 거라고 - 좌절과 고통을 견디고 인내로 버텨서 오늘날의 30대가 됐음을 알게 됐다. 조금은 벅찬 마음으로, 20대에 만나서 30대까지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을 한명, 한명 떠올렸다.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시간들을 (어떻게든) 견뎌냈음을 알기에 - 좀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이 어떻게 매일 똑같을 수만 있을까. 반복되는 것 같은 하루도 매일매일 새로운 길이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고민을 했을지, 어떤 시련을 겪고 무엇을 포기했을 지 (미약하게나마) 알 것 같아서 더 마음이 간다. 스스로의 경험에 반추해 서로의 힘듦과 노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청춘의 긴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공유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나는 - 내가 아는 모든 - 지금도 나의 곁에 있는 청춘의 일부들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나는 오늘도 당신의 30대를 응원한다고. 젊음이라는 존재 자체로 반짝거리던 당신의 한 순간을 기억하기에, 여전히 빛나는 그 마음을 알고있기에 -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라고.




잠실역으로 가는 횡단보도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로 걸어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만나자고 말했다. 이제는 꼭 자주 만나는 것만이 친밀도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 연락이 뜸하더라도 잘 지낼 것임을 알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서 노랗게 맺혀 빛을 발하는 은행잎처럼, 우리 삶의 일부도 무르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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