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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Nov 12. 2017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내게 온 것들

상황에 온전히 빠져들어서 책만 읽었던 한 달 후, 소설 한 편을 썼다.


30권의 책을 읽은 뒤, 소설 한 편을 썼다.


지난 1월, 40권의 책을 싸들고 인천의 작은 방에 들어갔다. 인터넷은 모두 끊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오로지 40권의 책과 나뿐이었다. 시간이란 온통, 책에만 몰입할 덩어리들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책상에서, 방바닥에서 책을 읽었다. 침대 머리께에, 방바닥에, 책장에 - 손이 닿고 시선이 가는 모든 곳에 책이 있었다. 일상의 환경이 책 속에서 이루어졌다. 자기 전에는 머리맡에 책을 놓고, 눈을 뜨면 손을 뻗어서 못다 읽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꼭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을 필요는 없었다. 마음 가는 만큼만 읽고, 또 다른 책을 펼쳤다. 하루에 네다섯 권, 그보다 더 많은 소설책의 책장들이 손끝에서 펄럭거렸다.


그렇게 2주간 책을 읽다 보니, 어느 날부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20권, 또는 30권 정도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써보고 싶었다. 눈 뜬 순간부터 눈 감는 시간까지 글자를 보고, 글자를 썼다. 그렇게 조금씩 써 내려갔다.


일주일쯤 지나자 뭔가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 글을 읽는 첫 번째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나를 만족시킬 수 없는 글은 타인에게도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까웠지만,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미련 없이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글이 써지지 않았기에, 잠시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또다시 종일 소설책만 뒤적였다. 감각이 깨질 때까지, 타인의 일목요연한 문장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조금 진정이 되자 새로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1장씩, 2장씩. 그렇게 6장을 쓴 뒤, 마지막 부분을 남겨두고 제주도로 떠났다. 5일 뒤, 인천에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한 장씩 써 내려갔다. 인천에 들어오고 3주가 되던 날, 10장짜리 단편소설 하나가 완성됐다.




책상에 내가 쓴 단편소설을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기분은 - 애매하고 묘했다. 처음으로 내가 쓴 글에 대해 나는 어떤 정의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이게 무슨 기분이야?'하고 묻고 싶었다. 분명 내가 시간을 들이고, 타자를 치고, 공을 들여서 쓴 글인데 - 내 글이 아닌 느낌이었다. 낯선 사람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뭐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 마침표를 찍던 순간 내가 쓴 글이 나를 떠났음을 알았다.


소설의 평은 좋았다. 실력이 확 늘었어. 글 그 안에 철학이 있어. 흡수력이 대단히 뛰어나.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소설만 준비 해.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람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궁금했다. 지난 한 달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인데, 무엇이 변화를 일으킨 걸까? 비로소 그 때야, 내 안에 있던 문학적(또는 배움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게 됐다.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되길 열망했고, 환경을 만들어 그 상황에 온전히 몰입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놀라워하고 즐길 차례였다.


며칠 후,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문득 이제야 레인 위로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쓴다'는 행위 자체에 빠져있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이 왔다. 마음가짐이 바뀌었고, 스스로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어쩌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 우리의 방향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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