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 does
오랜만에 만난 외국인 친구가 묻는 남편의 안부에 미처 적당히 둘러댈 답을 찾지 못해 결국 사실을 토해내기까지 한 2초 정도 망설였던가. 그리고 나온 대답은, 'I divorced.'
그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은 어째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준비 부족에 대한 자책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이혼 소식에 혹시나 이 친구가 당황해하면 어쩌나 괜스레 미안한 생각도 들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불편한 티를 팍팍 내고 있는데, 예상보다 덤덤한 표정의 이 친구는 마치 I divorced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라는 책이라도 미리 읽고 온 듯 전혀 놀랍지도 그렇다고 뭐 그다지 반가울 일도 아닌듯한 표정으로 말하길,
이 예기치 못한 그의 무미건조한 반응은 뭐랄까 그 어떤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서양 문화의 일환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대한민국에서도 어느샌가 이혼이 그렇게나 흔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인지 도무지 나야말로 어떠한 표정과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잘 모르겠는 어색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과 결심이 있다면, 향후 나의 이혼 커밍아웃을 할 때에 굳이 표정과 어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미리부터 시물레이션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다. 막상 현장에서는 어차피 준비한 대로 되는 연기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오히려 더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할 수 있어 그냥 최대한 담담하게 팩트만을 전달하고 그에 따른 반응과 그 현장의 분위기는 오롯이 듣는 이의 몫으로 넘기는 것이 서로가 덜 불편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결국 이혼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된 나에 대한 그들의 시선은 내가 의도한 그 모습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그저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이혼에 대한 정의, 콘셉트, 선입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애써 어색하게 연기를 할 필요도 구구절절 상황 설명을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제멋대로 편견을 갖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정답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불행한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했는데, 마치 나를 언제 이렇게나 위해줬었나 싶을 정도로 무조건적인 편을 들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사실은 나도 다녀왔어... 그렇게 그간 숨겨왔던 본인의 과거사를 꺼내놓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 내가 더 놀랄 지경이었다. 어쩐지 요즘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이혼, 돌싱 콘텐츠를 많이 다룬다 했더니... 가장 흔한 반응으로는 괜찮다,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고 아직 젊고 애도 없으니 이제 실컷 연애하며 즐기면 되겠네!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기대한 반응이란 것은 없었다.
이혼이란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 역시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적당한 대처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나의 커밍아웃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