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겪어서는 안 될 고통, 1편
"와~ 이렇게 큰 아기는 오랜만에 받아보네요!"
의사 선생님의 멘트와 함께 내게 든 생각은,
'출산, 이것은 인간이 겪어서는 안 될 고통이다. 어쩌다 인간은 이렇게나 큰 생명체를 낳게 되었는가...'
몇 해전 티브이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판다 곰의 출산 장면을 봤다. 출산이 임박한 어미 판다가 고통의 몸부림을 치기를 한참, 드디어 새끼가 나왔습니다!라고는 하는데 내 눈에는 도대체 그 아기 판다가 어디에 있다는 건지 너무나 작고 소중해 한눈에 찾아보기도 도무지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물며 그렇게 큰 짐승도 본인 몸집의 몇 천배는 작은 크기의 제 새끼를 낳으며 온몸을 뒤틀고 신음을 하는데 왜 어째서 인간은 어미 몸의 1/3 정도나 되는 이렇게도 큰 생명체를 낳아야만 하는가...!
현대 의학의 힘으로 감사하게도 죽진 않았지만 의학 기술이 이렇게 발전하지 않은 옛날에는 출산을 하다 죽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하고 당연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자이언트 판다도 전혀 자이언트스럽지 않은 크기의 새끼를 낳는데... 판다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습니다만..]
출산을 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와 관련된 두 가지의 잊지 못할 사운드가 있다.
첫 번째, 펑! 하고 자다 말고 터진 양수 터지는 소리.
정말 말 그대로 짧고 정확하게 펑하고 마치 살이 쪄 겨우 잠가놓은 바지의 단추가 버티다 못해 결국 밖으로 튕겨져 나갈 때나 날 법한 그런 소리가 내 귀에 명확하게 들렸고 그로 인해 출산 예정일이 되는 딱 그날 밤 12시 15분에 단잠에서 깨어나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양수가 터짐과 동시에 시작된 진통은 또 어떻고...
두 번째 잊지 못할 소리는, 아기의 몸이 전부 내려와 머리가 바깥으로 보일 때쯤 그를 온전히 내 보내기 위해 애쓰고 애쓰던 나의 이 좁고 연약한 골반이 낸 애처로운 신음 소리랄까. 두둑! 하며 트래스 포밍 또는 그냥 부러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골반 벌어지는 소리였는데 여담이지만 출산을 하며 특히나 망가진 허리를 고치기 위해 한참을 받았던 추나요법 때도 이런 소리는 안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소리에 대한 기억은 차라리 재미난 추억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출산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양수가 터진 이후부터이다.
출산 한 달 전부터는 매일 밤을 맘 카페에 올라온 출산 후기를 읽으며 겁에 질려 밤을 지새우곤 했는데, 산모마다 경우가 굉장히 다양해 사실 아무리 글을 읽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해도 그때뿐 실제론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그저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
더군다나 나 같은 경우는 담당의가 약간의 자연주의 출산을 선호하는 분이었어서 관장과 제모는 없을 거라 하셨고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중요한 아기의 머리 크기, 산모의 골반 상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과연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 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때맞춰 자연히 분만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참, 궁금하면 먼저 묻을 만도 한데 질문하지 않은 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긴 하지만, 내심 아무것도 몰랐으니 낳았지 조금이라도 아기 머리가 크다거나 내 골반이 좁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제왕절개를 계획했을 것도 같다.
그렇게 3.92kg의 건강히 큰(?) 아기를 만출했다.
요즘엔 아기가 좀 큰 것 같거나 산모의 골반이 좁은 편이라면 미리부터 계획을 해 출산 예정일 전에 조금이라도 아기가 작을 때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가 많아져 나같이 뱃속에서 4kg에 가깝게 다 키우고 낳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큰 아기는 오랜만이란 말까지 듣게 된 것인데, 결과적으론 '크게 낳은 아이가 출산 직후 황달 또는 기타 건강 회복과 관련해 더 잘 이겨낼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크게 낳는 것이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해 본다. (이 와중에 애미가 4kg로 태어난 것은 안비밀)
아이를 낳은 지 21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내가 느낀 임신, 출산, 육아는 이렇다.
임신은 40주의 긴 과정 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만 가지 신체의 변화를 오롯이 나 혼자서 이겨내고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외롭기도 쓸쓸하기도 한 심리전과도 같고, 출산은 그저 뇌마저도 정지시킨 상태로 나의 모든 세포와 감각이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육탄전과도 같았다면,육아는 이 셋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다면 높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뛰는 내 마음의 상태 때문인 것 같다. "엄마" 이 한마디에 극강의 행복감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좀 쉬고 싶은 마음에 뽀통령 영상을 틀어주는 내 모습에 왜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SNS상의 훌륭한 이유식 식단을 보며 셀프 비교를 통한 자책감은 정신병에 걸리게 하기 충분하다 못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존재가 주는 행복감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괜찮지만, 이 괜찮음의 뜻이 결코 출산의 고통을 잊게 해 준다는 뜻은 절대 아니라는 게 함정.
아직 모성애에 대한 학습이 덜 된 이 못난 애미의 출산에 대한 썰은 다음 편에도 계속됩니다.
** 첫 발행글이 '이혼'인데 반해 너무 갑자기 '출산'으로 넘어온 전광석화와도 같은 전개에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찬찬히 읽다보면 이해가 되는 스토리 라인이 되겠죠 으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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