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이야기
'이 손 잡으면 우리 사귀는 거예요.'
소개팅 이후 두 세 차례 만남 때였을까.
이 투박하면서도 직설적인 플러팅은 뭔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묘한 느낌이었다.
지방 소도시 출신이라 그런가...
허세 많고 능구렁이 같았던 과거 남자들의 들이댐과 비교해 본다면 그의 순박한 멘트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움이 있어 산뜻하고 좋았다.
'저는 연애를 하면 무조건 결혼을 전제로해요.'
이 부담스러운 밑밥은 또 무엇인가...
본인도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생활이라면 학을 떼고 싶을 것인데 나와의 만남이 결혼=재혼을 전제로 함이라니 그럴 생각이 없는 나는 내심 미안한 마음이었다.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창과 방패와 같은 신경전이 계속되었지만 어느새 나는 그의 치밀한 계획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편승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의 열애 끝에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결혼식과 신혼여행 따윈 존재하지 않는 각자의 두 번째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애 초반부터 묻지도 않은 자산 현황과 마이너스 통장 내역, 연봉, 이혼 사유등을 술술 털어놓는 그의 모습은 도대체 왜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를 저렇게 떳떳이 해대는 것인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내가 아는 보통의 남자들은 실제 본인이 가진 것보다 더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없어 보이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묻지 않은 속내는 굳이 떠벌리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은 빚을 나한테 갚아달라는 것인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의구심이 들정도로 마통 이야기를 자주 꺼냈고 어느 순간 빚은 다 갚았고 이제 결혼을 한다면 집은 어느 지역이 좋겠는지 비용은 또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의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재혼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가 그러든지 말든지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짜놓은 계획표대로 양가 부모님께 서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보금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으며 살림은 언제쯤 합치면 좋을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가 예정한 대로 자연스럽게 이끌려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이성 관계는 주로 내가 주도하고 책임을 지고 그만한 감정적 부담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여성상이라 생각했었고 연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삶 또한 그리 살아왔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으며 대단한 오해였음을 지금의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함께한 지 햇수로 8년 차인 지금도 가끔 남편은 나를 놀릴 때면,
'으이구, 이 의지충 진지충.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라며 본인의 존재감을 셀프 리마인딩 시키곤 하는데 처음엔 그 말이 그렇게 거북스럽고 억울하고 듣기 싫더니 오래지 않아,
응, 난 의지충. 그러니깐 여보가 알아서 다 해줘 :)
그랬다.
나는 그다지 독립적이지도 주체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또는 그 상황을 책임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이 그리했고 자라온 환경이 불안정했기에 그저 살아남기 위한 사회적 이미지였을 뿐,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겹 씩 나를 싸고 있던 굴레를 벗어내며 나의 본모습과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그와 함께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안식과 평온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혈연도 전 남편도 못 준 안정적인 삶이란 큰 선물을 선사해 준 지금의 남편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불안이 관성이 되어 드라마틱한 상황과 관계를 연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나의 모습은 참된 내가 아니었음을.
그 누구보다 누군가에 기대고 싶어 하고 의지하고 싶었던 여리고 아팠던 나의 영원한 비빌 언덕이 되어 준 그에게,
나와 재혼해 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