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너잖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일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쉽다. 구체적으로 내 생애를 알고 싶다는 어떤 욕망이겠지)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다. 당시 살던 아파트에는 또래 친구들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자주 놀러 가던 친구 <현>의 집은 우리 집보다 조금 더 넓었고, 가구도 별로 없는 데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친구였기에 항상 집에는 현 혼자뿐이었다. 현의 집에 놀러 가는 건 항상 어머니의 잔소리가 가득한 집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도망치기도 좋고, 놀러 가기도 좋은 그런 장소였을 것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현과 노는 것은 나에게 있어 큰 행복이기도 했다. 현과 항상 같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거든. 그러다 어느 날은 현의 집에서 눈치채지 못했던 현의 사진이 있었다. 어린 시절,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내가 발견한 현의 사진도 그러했다. 누가 봐도 현인데 어째서인지 현은 자기 사진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왜일까? 현은 왜 나한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걸까. 나는 현이 나한테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오기가 생겨 끝없이 추궁했다. 이거 너 맞지 않냐고 정말 10번은 물어본 것 같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10번 모두 "나 아니라니까?" 혹은 "내 쌍둥이 동생이야."였다. 결국 현도 지쳤는지 끝끝내 성질을 내고 말았다. 현은 도대체 뭘 숨기고 싶었던 걸까. 사진은 정말 모난 데 없이 잘 나왔는데 모종의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난 아직도 당시의 일들이 잊히지 않는데 지금까지도 그 진상을 알 방도가 없다. 어쨌든 현은 나한테 거짓말을 했고, 숨기려 했고, 억지를 부렸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도 현은 그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자기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체 왜였을까. 숨겨도 되고, 억지 부려도 되고 다 괜찮은데 나만은 믿어줬으면 했던 서운함이 컸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현은 고집이 좀 셌던 것 같다. 내가 했던 것을 자기가 했다고 우기기도 했으니. 그래도 그런 모습도 현이라 난 현이 싫지 않았다. 현은 외면도 내면도 괜찮은 아이였고, 예의가 발라서 경우가 없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과는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반도 멀어지고 함께 다니는 친구도 달라져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도 현과 같은 곳에 다니게 됐다는 소식도 건너 건너 알게 됐었다. 현과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나온 셈이다. 어릴 때 현을 좋아하던 순수한 마음이 아직도 있지만 우리들의 인생에서는 아주 찰나였구나. 성인이 되어 현과 한 번 연락한 적이 있다. SNS는 연결되어 있었는데 현이 하는 일이 잘되었다기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막상 현의 사업장을 찾아가진 못하고 연락한 건데 여전히 넉살 좋게 받아주는 현이 어릴 때 모습처럼 여전하구나 싶어서 알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었다. 변한 듯 보이지만 변하지 않은 현의 모습이 반가웠던 것 같다. 난 이미 잘 살고 있을 현이 그대로 잘 살길 멀리서 응원할 뿐이다.
문득 떠오른 현의 억지에 대해 적다 보니 현과 관련된 기억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것 같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현의 억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현이 부린 억지는 누구나 한 번쯤 부리는 억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땠나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나는 자존심이 세지만 억지를 부리는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꾸미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때가 있긴 했더라고. 비교적 최근으로 내 인생 최악의 시즌에 일어났던 일 중 하나인데 전 애인에게 매달렸던 일이다. 전 애인과는 23년도에 헤어졌는데 녀석과 헤어질 때 나는 아주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내 인생을 새로 바꿀 큰 야망과 계획이 있었고 그 한 걸음을 내디딜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인물이 등장한다. 전 애인과 헤어지기 직전에 알게 되었다.
<수>는 감정에 세심(민감)하고 표현과 꾸밈이 가득한 인물이었다. (녀석을 기억하는 것도 이젠 정말 싫지만 내 인생에서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이니.. 그냥 쓰겠다) 나는 수와 친해졌다고 생각했고, 수에게 헤어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다가 싸웠다. 당시 나는 전 애인과 헤어지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수와 싸우긴 했지만 어느정도 맞는 말도 섞어서 하길래 정신이 좀 들었고, 수와 싸운 게 전 애인과 헤어짐을 촉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기서 '수에게 평범한 고민을 털어놨는데 싸웠다는 맥락이 맞나?' 싶겠지만 수와는 그런 관계성을 가졌다. 모든 일의 끝이 싸움인 그런 관계였으니. 아니 시작이려나... 뭐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군. 어쨌거나 수와 엮이는 기간 동안 너무너무 힘들었다. 자세히는 적지 않겠지만 심적으로 망가지니 외적으로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수는 가스라이팅의 귀재였고, 나르시시스트 그 자체이며 극단적으로 자아중심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수 덕분에 우울증은 물론이고 자살 충동에 각종 정신병을 겪은 것 같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내 삶이 피폐해지고 진창이 되었으니까. (나는 병원은커녕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기 시작했다) 수로부터 옮은 이 정신병들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한 번은 복수를 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병이라고 생각하기에 금방 떨쳐낸 것에 감사한다. 그렇게 수에 시달리다가 너무 괴로운 나머지 한 번은 전 애인과 헤어진 상태에서 녀석에게 연락하고 말았다. 기댈 곳이 없어서... 아니, 있어도 한없이 무너지니 그릇된 행동을 해버린 거야. 정신이 미쳐버리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걸 몸소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전 애인과 헤어질 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녀석에게 하소연 한 내용도 그냥 내가 살고 싶어서 나를 위해달라는 말들 뿐이었으니. 녀석은 나를 위로해 주며 하나님께 기도해 보라고 말하더라. 그냥 우리 둘이 다시 잘해보면 안되냐는 나의 절박한 말에 매몰차게 신을 불렀다. 신 말고 너를 원했는데. 물론 결과적으로는 돌아오지 않아 줘서 고맙다. 내가 나답지 못하게 한 행동에 대하여 딱 잘라 끝맺어준 덕분에 더 최악인 모습은 면했으니. 나의 억지를 끝까지 옳게 받아준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게 잊어갈 테니 잘 살아가기를. 만날 인연은 어떤 구멍으로든 만나게 되듯이 헤어질 인연 또한 어떻게든 헤어지니까. 억지를 부려도 안됐으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다.
만약 악연도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거라면 난 최선을 다해 피할 것이다. 내 인연에 최선을 다하듯이.
글을 쓰며 내 안을 비우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면 언젠간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하루하루가 바뀌어주지는 않으려나. 글 쓰면서 손톱을 너무 많이 뜯었다. 난 대체 뭐가 불안한걸까? 언제쯤 손톱을 그만 뜯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