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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Oct 08. 2020

[Sep: 다이어트]  과잉의 삶



  호기롭게 책들을 쏟아낸 참이다. 신박한 정리를 보고 이사한 후로 다짐했던 미니멀라이프를 비로소 실천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원룸에서부터 가져왔던 모든 짐들은 넓어진 투룸에 이사오고는 새 물건들과 어색해졌다. 버려야 할 것들은 많다 싶은데 버릴 수 없는 것들. 이를테면 애써 조립한 저렴이 선반이나 몇 장만 쓰고 나머지는 하얀 노트라든지 방 곳곳에는 어설프게 놓였거나 그마저도 여러번 머릿속에서 바뀌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물론 북엔드가 아니면 힘없이 쓰러    지는 파일과 꾸역꾸역 본가에서 가져와놓고 읽지않는 책들까지 모두 거실에 쏟아냈다. 일단 배출과 나눔, 욕구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기 위해서다.

이 상태로 일주일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기 싫은건 정-말 하지 않는 자아상을 마주한다. 본가와는 떨어져 사는 30대 여성 싱글 1인가구는 어떤 일을 미루는 데에 최적화 되어있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의 기준으로 물건들을 분류하고 버릴때는 미련없이 버릴줄도 알면서 이렇게 쌓아놓고 보면 마치 나의 욕망이나 군더더기를 실로 마주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살빼면 입어야지, 하고서 몇 년을 옷장에서 묵히다 결국 못입고 버리는 경험을 하고나서는 조금 수월해지긴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꼭 한가지씩은 여행지에 버리고 오는 일종의 징크스(?)는 많은 신발과 더이상 안입을 옷들을 그곳에 두고 오게 하기도 했다.


  책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은  분명히 필요에 의해 사거나 모은 것이다. 특히나 책이나 문서류는 마치 내게 있어야 할 지식이자 기억해야 할 증명과도 같아서 오랜만에 발견하면 새록새록 생각나는 앨범과도 같다. 그러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필요로 할 것 같은 것들은 동의어가 아니다. 적어도 6개월에서 2년을 한번도 쓰지 못했던 것이면 버리거나 나누는 편이 맞다. 내게 있어서 썩어가고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면 그게 수 만원을 주고 산 것이든 나에게는 다이소에서 산 1000원짜리 수세미보다도 못한 것이 된다.


잘 버릴 줄 알게 되는 건 욕심을 내려놓는 일과 비슷하다. 어떻게든 잘 활용해서 살림을 잘 하는 사람들의 물건들을 보면 내가 가진 물건들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할 수 있을것만 같은데 그러려면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야하나보다. 직접 담아보고 위치도 많이 바꿔보고 해 가면서.


15년째 같은 아파트에 가구를 위치 한번 바꾸지 않은 본가에서 우리가족은 못 하나도 박지 못하고 살았다. 지저분하거나 집 자체에 흠결내지 않고자 노력하는 아빠의 암묵적인 강요에 의해, 나는 오랫동안 내 방에 있을때에도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러번 자취방을 옮기면서 지금의 집에 이르러서는 필요한 것을 사기만 하고 머리로만 그려내는 설계도에 따라 그저 생활하는 중이다. 그건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잘 버리고 부지런한 완벽주의 아빠의 영향과 다년간 전월세, 원룸과 고시원 오피스텔을 모두 경험해봤지만 그건 집의 형태보다는 방에 가까우며 내가 집주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코로나 이후로 확진자는 줄어드는 시기이지만 나는 여전히 살이 확찐자다. 서울의 5.5평 답답한 원룸을 벗어나 자연친화적인 경기광주로 이사한 것도 응축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한 행보였다. 오랜만에 미리추석을 위하여 일찍 울산 본가에 내려오면서 캐리어에 싼 짐에는 계절을 지나버린 여름옷이 포함되었다. 반년이 훌쩍 지나 만난 친구들과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에 30대를 지나는 우리의 좁아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나에게 다이어트는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잘 살기 위하여 현재의 과잉을 줄여내는 일, 거기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관계와 욕심도 포함한다. 그건 무척 힘든 과정이다. 내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인지하고 처리한 결과를 보면 누구나 하고 싶지만 그것을 해내는 과정과 유지하는 것까지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나는 진짜 다 좋은데 살만 빼면 더 예쁠텐데 '하며 술을 먹고 선을 넘던, 삐쩍 마른 남자애의 말에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공부 잘하면 서울대 가는 거 다 아는데 너는 왜 못갔어?' 살을 빼는 대신 그 애를 빼버린 건 아무래도 잘했던 것 같다.





월간사색은 글쓰기에 서툴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미니 작가들의 모임에서 매월 다른 주제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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