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340 - 나의 영웅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군가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으며 살아간다.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운다. 내 삶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아빠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십 팔 년을 아빠와 함께 살았다. 아빠가 먹는 것, 아빠가 입는 것, 아빠가 하는 행동들이 내 무의식에 조금씩 새기면서. 엄마와 50년을 함께 살아오신 분이다. 결혼 당시에 아빠는 직업이 없었다. 엄마에게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시집올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셨다고. 그러자 당시 아빠는 대학을 나왔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셨다고. 엄마와 결혼 후 1년 동안 정말 힘들게 살았었다고 하셨다. 다행히 취업 경쟁률이 낮은 경상남도 산청에 발령을 받아 선생님이 되셨다. 아빠가 국어선생님이 되기 까진 선생님을 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셨다고. 친구가 대학원서를 내주었고, 할머니가 일하던 정*한의원 사모님이 이쁘게 여기셔서 학비도 지원해 주시고, 휴학했을 때도 다시 학교 가라고 부추겨서 입학했다. 한의원 따님이 아빠에게 "오빠, 선생님 해 봐."라는 말에 두 달 동안 교육을 받고 교원 자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없어서인지 교사 자격을 쉽게 받았나 보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다. 수학과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수학은 마감이어서, 그것도 친구가 또 국어 과목에 원서를 넣어서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고.
아빠는 20년 이상 입고 다니는 잠바가 있다. 아빠가 산 것도 아니고, 뒷집 아주머니께서 아저씨가 입던 옷을 아빠에게 입으라고 주신 옷이다. 담배 구멍도 생겼지만, 아빠는 그 옷이 편하다고 아직도 입고 계신다. 목요일에는 주민 자치센터 서예를 듣고 계신다. 할머니 네 분과 마음이 맞으셨는지, 수업을 째고 월미도를 다녀오신다고 했다. 가는 길에 만다복에서 하얀 백 년 짜장이 유명하니 가보라고 이야기드렸다. 수업에 동시에 5명이 빠지면 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고, 아빠와 할머니 한 분은 미리 못 간다고 연락을 했고, 나머지 세 분은 무단결석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수업에 빠진 할머니에게 전화를 계속했는데, 안 받으셨다며 깔깔 거리며 웃으셨다. 카페에 들어가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저녁 5시였다고. 집으로 오는 전철은 온수에서 환승을 했어야 했는데, 이야기하느라 환승역을 지났다고 했다. 다음 역에서 지하철을 환승했다고. 늦었으니 저녁도 먹고 가자 하는 할머니 덕에 노량진 근처에서 청국장집에 다녀오셨다고. 점심은 입맛에 별로 안 맞았는지, 특별하니까 먹어봤다고. 집에 오니 8시가 넘었다고 하셨다. 금요일에는 혼자 응봉산 개나리 꽃을 보러 혼자 다녀오셨다. 어제는 비가 와서 어딜 가지 못했는데, 언니가 마침 조훈현 바둑에 관한 '승부'를 예약했다고 보고 오셨다. 아빠는 집에 계시면 항상 바둑채널이나 장기를 틀어놓곤 했다. 집에도 바둑책이 있다. 승급 시험을 본 건 아니지만 1단 정도 된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과 바둑을 두면 몇 판 져주고, 몇 판 이기고 하실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상대방이 바둑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신다. 승부욕이라기보다는 시간 때우기, 상대방 기분 좋게 하는 게 취미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컴퓨터를 혼자 독학하셨다. 아래한글, 엑셀까지. 시험문제도 다른 사람은 손으로 쓸 때 아빠는 한글로 작성하셨고, 내가 학교 다닐 때 구했던 가계부 엑셀파일을 아직도 작성하고 계신다. 아빠 나이 여든세 살. 엑셀 가계부르 쓴 지 17년이 넘었다. 차를 타고 다니셨을 땐 항상 그날그날 차계부를 적었다. 몇 킬로미터 다녔는지, 어디 다녀왔는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땐, 항상 시간을 역으로 계산하셨다. 몇 시에 도착하려면 몇 분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지. 항상 늦은 법이 없다. 어딜 가기 전에는 지도를 켜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 공부하신다. 차로 어딜 갈 때 아빠를 테우면 요즘은 아빠는 뒷자리에서 티맵을 켠다. 지금 어디고, 어디로 가고, 얼마나 더 가는지 궁금해서. 선택권을 주면 항상 '아무거나'를 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아빠의 속마음은 늘 숨긴 건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마음이 편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난 아빠를 쏙 빼닮았다. 그러니 2900일 동안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도 힘들기보다는 일상이 되었다. 어딜 가면 지도부터 확인해서 어떤 경로로 가는 게 편한지 확인한다. 아빠가 해주는 감자볶음, 된장찌개가 미슐랭 별 3개보다 맛있다.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의 저자 비탈리 카스넬슨의 책소개를 하와이 대저택 영상에서 봤다. 늘 그에게는 아버지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폭싹 속았어요'에도 애순의 아버지 관식이 나온다. 관식은 늘 애순의 그물이 되어 주었다. 어디서 넘어지고 떨어져도 뒤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냅다 나오라고, 빠꾸 하라고.
여든셋, 아빠는 이제야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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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 책 쓰기 코치 와이작가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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