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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작가 이윤정 Jul 18. 2024

아빠, 어디가?

거인의 생각법 79 - 불가능하다고 믿던 일을 향해 가기

"오랜만에 와보니까 여기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

"9km 더 가야 돼"

"9키로?"

"예"


갑자기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일정은 퇴고하고, 오후에는 새로 산 스마트폰을 설정하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일정이 틀어졌죠.


내일은 한 달에 한 번 아빠와 데이트하는 날이에요. 아빠와 어디 여행 갈까 고민하다가 청와대가 생각났습니다. 장마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실내 구경하면 되겠지 싶어서 2인으로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문자로 아빠에게 내일 10시에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어요. 잠시 후 통화를 했습니다. 알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빠한테 다시 전화가 왔어요.


"내일 부산에 가야 될 것  같은데?"

"그래요? 청와대 티켓은 취소해도 괜찮아요. 다음에 가도 되니까." 


아빠가 청와대 티켓 예약한 게 마음에 걸려서 전화를 하신 듯 보였거든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산에 왜 가냐고 여쭤보니, 아빠 사촌 동생의 남편 부고 소식을 들었다고 하네요. 이왕 내일 아빠와 보내는 시간으로 정했으니, 함께 부산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혼자 가도 된다고 하셨지만, 기차표가 있나 없나 알아보는 게 먼저였죠. 어차피 내일은 아빠와 보내기로 예약해 둔 날이니 부산에 함께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TX좌석을 알아봅니다. 원하는 시간대는 다 매진...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해서 저녁 7시 넘어서 부산을 출발하는 차편이 있네요. 그것도 자유석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필 금요일이네요. 그래도 그 좌석이 어디냐며 일단 예약해 두고 아빠에게 문자로 출발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언니에게 전화가 옵니다.  


"아빠랑 부산 간다며? 시에 갔다가 시에 올 거야?"


차표가 저녁밖에 없다고 얘기했더니, 언니가 갑자기 오늘 같이 차를 끌고 가서 1박 하고 내일 올라오자고 합니다. 차로 가면 4시간 운전해야 하는 데요. 힘들다고 기차 타고 가겠다고 했더니, 차 타고 같이 다녀오자고 합니다. 


결국 사당역에서 만나 함께 내려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부산 1박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 아빠가 부산에서 살았던 적도 있으시고, 친척이 부산에 있어서 몇 번 다녀오신 적도 많으신데요. 빗 속을 뚫고 몇 년 만에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오니 주변에 낯선 광경들과 새로운 도로가 신기하신가 봐요.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옛날에 없던 도로라며, 이 길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완당집'도 궁금하다고 하시고요. 


최근 아빠는 해외여행 같이 가자고 제안을 받으셨더군요. 따라가고 싶긴 한데, 많이 걸을까 봐 걱정하는 듯 보였어요. 다리가 좀 불편하셔서. 많이 걷지 않는 곳인지 여쭤 보고 다녀오라고 말씀드렸죠. 다음엔 대만이나 홍콩 중에 어디 가고 싶냐고도 여쭤봤어요. 제가 모시고 가려고요. 아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하나씩 도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안된다고 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한 번 해볼까라고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엄마 보살피느라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오셨죠. 


기차 타고 왔으면 하지 못할 경험들을 아빠, 언니와 함께 내려오니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이제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먹은 대로 아빠는 해내실 거라 믿어요. 아직 건강하시니까!


무사히 부산에 잘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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