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생각법 94 - 아이처럼 궁금증을 품어라
또 수박을 사러 갔다. 수박을 이틀 만에 다 먹었다. 오늘 저녁 9시에는 퇴고 안내가 예정되어 있었다. 운동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수박을 왜 또 사러가고 싶었을까. 집에 수박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야만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사실 오늘 글쓰기의 글감은 W덕분에 나온 글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매일 글 쓰기로 해서, 글감을 저녁마다 정한다. "오늘은 뭘 쓰지?"라는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옆에 있던 W가 갑자기 말문이 터졌다.
"쓰고 싶은 게 있어야 쓰지. 재밌는 글 나오기는 글렀다. 이게 뭘까? 이런 생각, 이런 주제. 자기는 책을 왜 읽어? 재미없는 주제를 정하면 돼? 답도 모르는 주제를 정하지 말고. 예를 들면, 나는 왜 떡볶이를 좋아해? 왜 돈가스가 먹고 싶었지? 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런 게 재밌지. 돈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듣기도 짜증 나는, 재미없는 질문을 하니까. 글이 재미가 없지. 범죄도시 마동석은 왜 거기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새 영화 나오면 매번 보다가 요즘 영화는 왜 재미없을까? 행복 돈, 자꾸 그런 생각만 하니까 좁아지는 거야. 나는 왜 헬스 기구 중에 꺼꾸리를 해야 하지?"
"와. 잘한다! 하하하"
"거봐. 그런 거 쓴다고 생각하니까 웃기도 하고, 한 번 더 생각도 하는 거지. 왜 그런 재미없는 걸 하는 거야?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면, 엄청난 범위로 확장되잖아. 아이고 답답해 정말..."
뭘 쓰지라는 한 마디 했을 뿐인데, 폭포수 같이 남편이 글감을 쏟아냈다. 그래서 오늘 쓴 글의 글감은 나는 과연 수박을 왜 샀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오늘 저녁 9시에 글쓰기 퇴고 안내가 있었다. 초고에 대한 견본을 작성하느라 저녁 6시 30분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있다가 또 두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니 안 되겠다 싶어서 30분이라도 걷고 와야지 생각했다. 올림픽 공원을 오랜만에 걸었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직전이어서인지 구름이 주홍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크게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작은 호수만 돌아야 했다. 3/4바퀴쯤 돌았을 무렵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너무 늦은 거 아냐?"
"지금 파스쿠찌 앞이야.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
내가 또 무리해서 많이 걷고 올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38분이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수박' 생각이 났다. 지난주에 처음 맛본 한살림 수박이 올해 먹은 수박 중에 가장 아삭하고 달았다. 무엇보다 씨도 적었다. 할인 쿠폰까지 받아서 19000원에 샀었다. 저렴한 가격에 남편과 옛날 수박 같은 맛을 느꼈다. 8kg 정도였다. 나 먹으라고 잘 안 먹던 남편도 맛있었는지 함께 먹은 수박이었다. 월요일에 수박을 다시 사러 갔다. 장마라 그런지 수박이 없다. 남편은 수박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화요일마다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선다. 과일가게 한 군데가 있는데, 과일이 싱싱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딸기, 사과, 배, 참외, 복숭아, 포도를 사곤 했다. 수박철이다. 일주일에 한 번 수박을 샀다. 지난주엔 비가 와서 수박을 못 사서 한살림에서 수박을 산 거였다. 그런데 한살림 수박이 더 맛있었던 것. 한살림에 먼저 들렸다. 역시 수박이 없다. 그냥 나오려다 남편이 또 물어볼까 싶어서 수박 언제 들어오냐고 물었다. 점원은 언제 올지 몰라요 한다. 문 밖으로 나와 걸어가려고 하니 점원이 다시 쫓아 나오면서 수요일, 내일 수박 들어오네요라고 말소리 쳤다. 알겠다고 하면서 다시 과일가게로 돌아가 수박을 보러 갔다. 수박이 보통 때보다 훨씬 컸다. 몇 킬로그램정도 되냐고 물었더니 10kg이 넘는다고 한다. 양구 고랭지 수박이었다. 지난번에 8kg 정도 되는 수박을 들여놨다가 맛이 없어서 다 반품했다며, 이번에는 큰 수박만 가져다 놓았다. 금액은 42000원이나 했다.
부모님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주셨던 용돈 5만 원을 들고나갔다.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4만 원대 수박을 사 왔다. 남편이 무겁다며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수박 겉면을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오후에 수박을 잘랐다. 칼을 대자마자 쫙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수박에 씨가 몇 개 없다. 내가 찾던 수박이다. 어려서부터 수박을 좋아했다. 엄마가 친구들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친구들 머리수만큼 수박을 사놓으실 정도였다. 아빠는 수박을 깍둑썰기 해서 통에 담아 주셨다. 놀러 가서 먹으라고 아이스박스에 담아 주셨다. 그 기억 때문에 수박을 사면 반을 갈라 깍두기 모양처럼 잘라 통에 담게 되었다.
핑크빛이 도는 수박이다. 과육도 단단하고 아삭하다. 씨도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박 타입이다. 오랜만에 거금을 주고 수박을 샀는데, 좋아하는 수박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10kg 반통을 하루 만에 다 먹어버렸다. 남편도 같이 먹었지만, 남편은 지난번 한살림 수박이 더 달았다며 한살림에서 한 통 더 사라고 부추긴다.
오늘 산책하러 갔다가 그 생각이 났다. 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수박을 사러 한살림에 들렀다. 세 덩이가 있었다. 작은 걸로 하나 달라고 했다. 옆에 점원이 계산하는 분에게 오늘 누가 수박을 사갔는데 맛있다고 하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얼른 "지난번에 사갔는데 저도 맛있었어요!"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집에 수박이 반통 남아 있는데도, 또 수박을 사 온 이유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지 말자. 남편 말처럼 우리에겐 철학적 질문보다 오늘 있었던 사소한 행동, 고민, 결정이 더 재밌는 글감이었다. 아이처럼 궁금해하면서 질문하면 써야 할 글감이 너무 많다. 오늘 사온 수박 맛은 내일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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