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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작가 이윤정 Nov 21. 2024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

《내가 천 개의 인생에서 배운 것들》, 김도윤, 2780회차

241121 경청하기

오늘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여보, 나 집에 가고 싶어.”

오해와 오해가 만든 날《내가 천 개의 인생에서 배운 것들》, 김도윤



오해와 오해가 만든 날이었다고.. 글을 읽다가 뒷목, 등, 팔뚝, 허벅지까지 근육이 죄어오며 찌릿하게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엄마의 모습과 교차되면서 감정이 울컥하게 되네요. 가족들이 보기엔 왜 저럴까 싶은데 본인 스스로는 견디기 힘들구나, 누구에게 말하기 쉽지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적 있습니다. 다행히 회복하셔서 집으로 오셨는데요. 그 시간은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순간만큼 어떻게든 맑은 정신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라는 축복이 깃들여졌던 것 같아요. 

엄마 인생에 엄마 자신은 없었다. 오로지 ‘엄마’만 있을 뿐이었다. 엄마 자신의 시간도 없었다. 오로지 ‘엄마로서의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내가 천 개의 인생에서 배운 것들》, 김도윤

몇 개월 만에 엄마 스스로 폐쇄 병동에 입원하고 싶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하고 싶다고 하니 아빠와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병원에 보내드렸습니다. 엄마는 아빠 없이 살아오신 적이 없던 터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폐쇄병동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과 확신을 키우기 시작하셨어요. 김작가 어머니와는 반대로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병동을 나오셨습니다.  엄마의 정신이 또렷해졌던 시간은 몇 개월 가지 않았고,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119를 불러 입원했지만,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요양병원으로 이송하길 바랐어요. 그렇게 엄마는 요양병원으로 다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는 연명치료 여부에 보호자 동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저렸지만 아빠는 담담하게 서명을 하셨어요. 그게 엄마가 더 편안할 거라는 말에 저도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밤 9시경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라는 전화였어요. 늦은 밤이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죠. 엄마를 찾아간 병실은 6인실이 없는데 엄마 주변에도 할머니들이 누워계셨습니다. 엄마 주변에는 여러 가지 선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엄마라고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요. 그래도 살아있는 엄마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온기는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처음 영안실에 들어갔습니다. 엄마의 몸이 차가웠어요. 엄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은 나중에 지울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고, 도저히 다시 쳐다볼 수 없겠더라고요. 


엄마는 저를 참 사랑해 주셨어요. 전화도 하루에 몇 번씩 하셨었는데, 그 전화가 왜 그리 귀찮았었는지. 요즘 제 전화기에는 전화벨이 잘 울리지 않습니다. 그저 스팸 광고전화가 왔다가 잠시 후 끊어지는 게 전부네요.


"우린 그래도 곧 다시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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