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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May 07. 2018

미안하다 공부하자

어느 고3 담임의 편지

 1회고사가 있었다. 너희의 입시를 위해서는 이번 내신이 말할 수 없이 중요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너희는 긴장했고, 나날이 다크서클이 늘어갔지.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피로에 짓눌린 불안한 듯한 시선이 나를 슬프게 했다. 3일간의 1회고사가 끝났다. 엄청나게 성대한 행사도 끝난 직후에는 하루정도 쉴 텐데 다음날 바로 이어진 야자가 참 미안했다. 그리고 이틀 정도 주말이라 쉬었고 오늘은 대체공휴일. 빨간 연휴라고 어디에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날이지만 우리는 여기 교실에 나와 있다. 오늘은 비가온 뒤라 창밖의 초록도 유독 싱그럽고 미세먼지도 보이지 않는다. 주말을 지내고 온 너희는 조금 충전이 되었을까. 여전히 1회고사 결과에 낙담하며 우울해하고 있을까. 일년에도 열 번 가까운 시험을 보며 절망과 좌절을 배우겠지만, 그게 너무나 가혹한 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저 나는 그때마다 일어서는 법도 배웠으면 좋겠다. 포기와 낙담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일어서는 방법, 그것을 알고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된 교육이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우라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만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너희는 성장하고 있고 언제 어디서든 모든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나는 깨어있어야만 한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조차 ‘미성숙’하다며 투표권도 안 주는 사회에서 뭘 그리 너희에게 바라는게 많을까. 아침도 못 먹고 휴일에 등교하는 너희를 보며 난 그저 아직 나조차 모르는 미래를 묘사 중이다. 내년의 봄은 다를 거라고. 내년에는 꽃도 새도 나비도 보일 거라고. 비겁하게 협박도 한다. 지금 쉬면 이 레이스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내년에도 이 짓을 또 할 거냐고. 사실 이 경쟁의 레이스는 우리 삶을 지겹도록 따라 다닐 텐데, 이 궤도에서 벗어나 대안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텐데, 너희에게 그 용기를 키워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3담임은 양가적이다. 지옥 같은 입시전쟁터에서 계속해서 공부하라고 다그쳐야하는 역할을 부여받을 때는 내가 꼭 너희에 대한 가해자 같다. 이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다. 물론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가 너희의 미래에 대한 동기부여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막상 수험생 입장에서는 한마디 한마디가 서운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충과 야자를 안 하겠다는 너희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 설득을 해야 한다. 괴로운 건, 너희의 논리와 의지가 틀린게 없음에도 나는 학교에 남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묻겠지만 담임 입장은 또 그렇지가 않다. 


 너희의 예민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너희를 보고 이야기할 때는 일단 입 꼬리를 당겨 미소를 만들고 눈에도 긴장을 주어 웃는 얼굴을 만든다. 그런데 사실 별다른 노력 없어도 너희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어서. 너희가 고개를 숙인 채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면 나는 너희의 모습을 찬찬히 살핀다. 대학생이 된 너희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꿈을 이룬 직업인으로서의 너희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해. 사람의 삶이 꿈을 향해 걸어가는 위대한 여정이라면, 적어도 그 첫 번째 기로에서 또는 오르막에서 함께 손잡는 존재가 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는 부담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전제하고 살지만-특히 우리 같은 입시 수험생은 더욱 그러하지만 인간은 사실 어느 한순간도 과거나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오늘과 지금을 살아가고 있지. 너희와의 인연도 그렇다. 먼 미래에 너희가 나를 생각해주거나 찾아오는 일을 상상하면 참 따뜻해지지만 그 서글픈 그리움을 지금 미리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너희와 함께하는 순간들마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직업은 일 년을 열렬히 사랑하고 또 이별해야만 하는 가혹한 것이지만 질 것을 모른 채 분분히 피어나는 꽃들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우리 만남은 은은한 벚꽃이 될까 화려하고 장렬한 목련이 될까 아니면 몇 번의 계절은 필요한 가을꽃이 될까. 


 이름 모를 새가 외로이 운다. 휴일에 툴툴거리며 등교했을 너희가 그래도 외로워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학교에는 ‘친구’가 있다.

                                                                                                                                                          20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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