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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Apr 22. 2024

달랏이 기대와 달랏(달랏1)

휴직하고 세계여행 04

일광화상이 회복되며 몸의 상태는 통증에서 가려움으로 변했다. 물집은 피부의 껍질로 바뀌어 번데기가 탈피하듯 각질이 계속해서 생기고 떨어져 나간다. 힘든 몸을 이끌고 이제 달랏으로 가야한다. ‘풍짱 버스’에서 운영하는 슬리핑 버스. 말 그대로 누워서 간다. 세시간 정도 가는데 확실히 편하다.

달랏에는 기대가 많았다. 고지대에 위치해 1년 내내 기온이 온화하다는, 그래서 '영원한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닌 달랏. 도시 가운데 커다란 호수가 있고, 인구 30여만의 중소도시라는 것까지 춘천과 닮았다. 나는 20대와 30대 대부분 춘천에서 살았다. 달랏은 2019년 춘천과 자매결연을 맺은 자매도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방송에도 많이 나와 낭만과 미식의 도시로도 알려졌다.

1박에 2만 원 채 안 하는 작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구글리뷰의 극찬과는 달리 허름하고, 개미도 나오지만 가난한 장기여행자에게 이정도면 충분하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오토바이와 차, 보행자가 뒤섞인 길을 건넌다. 베트남의 거리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정어리 떼처럼 도로를 지나는 오토바이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히지 않는지, 횡단보도가 있으나 신호는 없는 도로를 어찌 잘들 건너는지 궁금하다. 물론 여기 현지인들은 걷지 않는다. 그들의 다리는 오토바이 바퀴다. 보행자는 우리밖에 없다. 유명하다는 야시장으로 간다. 비슷한 음식들에 부담스러운 호객 행위. 이미 대만에서 야시장의 진수를 맛본 후라 성에 안 찬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쑤안 흐엉(Xuân Hương) 호수다. 둘레가 5km 정도 되는 꽤 커다란 인공호수인데 베트남어로 '봄의 향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오리배들이 정박해 있는 게 꼭 춘천 공지천과 닮았다. 찾아본 바로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조성되어 있고, 프랑스풍의 건물이 호수를 두른 시민들의 휴식처라 한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뛴다. 썩 평화로운 풍경이라 생각하며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엄청 큰 쥐가 곁을 스쳐 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져 있고, 죽은 물고기들도 둥둥 떠 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이 호수가 딱 그렇다.

다음날, 호숫가를 따라 달랏 기차역까지 걸었다. 도시의 민낯이 더 자세히 보인다. 호수로 합류되는 습지가 있는데 쓰레기와 하수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간다. 아주머니 한분이 쓰레기를 건져내고 있다. 둑에는 쓰레기 무더기가 이어져 있고 냄새도 심하다. 떠돌이 개들이 쓰레기를 뒤진다. 달랏, 생각보다 더러운걸.

유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달랏역에서 짜이막 역까지 기차를 탔다. 관광용 증기 열차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유물을 아직도 운행한다고 한다. 동네를 지나고, 학교도 지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선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 기차에서 손을 흔들면 아이들이 함께 웃어준다. 그런데 기차에서 보이는 야산과 들판에도 쓰레기가 가득하다. 짜이막 역에서 린푸억 사원을 관람했는데, 이 사원의 별명이 쓰레기 사원이란다.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거대한 사원을 꾸민 모자이크 양식이 돋보이는 절이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는 과연 이러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달랏에 오자마자 쓰레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쓰언흐엉 호수 맞은 편에는 람비엔 광장이 있다. 해질녘 돌아왔는데 노을이 아름답게 진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광장을 즐긴다. 해가 넘어가고,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 광장에서 호수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으려 했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들이 떼 지어 돌아다닌다. 여기서 뭘 먹는 건 아니다 싶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쥐와 바퀴, 쓰레기는 계속 나타난다. 아, 생각보다 실망인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 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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