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의 첫인상이 무색하게 호텔 사장님은 무척 다정했다. 내외분 모두 한국어를 조금 하시는데 매일 과일도 주시고, 근처의 맛있는 식당도 소개해주셨다. 한국인에게 평점이 유독 높은 호텔인데 왜 그런지 알겠다. 사실 이름만 호텔이지 방도 좁고 가격도 무척 저렴한 여관 수준인데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저녁마다 리셉션에서 사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트남과 한국의 다른 점,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 등을 이야기해주셨다. 한글을 적은 서툰 글씨가 반가웠다. 수기로 숙박명부를 적는 이 숙소는 개미도 나오고 에어컨도 없고 그래서 한낮에는 매우 덥지만, 사장님 내외의 다정이 모든 걸 이겨냈다. 기분이 좀 좋아져서인지 언덕이 많은 골목길이 정감있게 느껴졌다. 근처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숙소에서 낮잠을 자면 평화롭게 새가 지저귀었다. 낮에는 다소 덥지만 해질 무렵부터는 선선해서 걷기 좋다. 현지인들은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지만 여행자인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하루는 구름사냥을 나섰다. 고산 지대에 올라 일출과 함께 산 아래 깔린 구름을 감상하는 여정이다. 현지어로 săn mȃy라고 하는데 구름사냥으로 번역된다. 택시를 타고 새벽 5시쯤 도착하니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지며 환상적인 색이 세상을 물들인다. 먹색에서 푸른빛으로 보라에서 붉은빛으로 세상이 변하고 발아래 운해가 가득하다. 운 좋게 일출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매일 뜨는 해인데 특별하다. 현지인들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소중한 순간을 담는다. 해가 뜨며 구름이 급하게 몰려간다. 구름사냥이라는 이름이 적확하다. 여기서 먹는 컵라면은 얼마나 또 꿀맛인지. 살면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폭포에서 캐니어닝도 했다. 별 생각 없이 ‘다딴라 폭포’라는 곳에서 여느 관광객처럼 알파인코스터만 타고 올 생각이었는데, 길쭉한 서양인들이 구명조끼와 장비를 착용하고 우르르 몰려가는 걸보고 따라간게 시작이었다. 그들이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아찔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찾아보니 캐니어닝은 로프 하나에 의지해 계곡을 따라 급류와 암벽을 타고 폭포를 내려오는 레포츠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이 났는데 아내가 더 모험을 원했다. 결국 달랏에서의 일정을 이틀 연장하고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는 네덜란드, 영국, 호주 친구들과 함께 했는데 영어로 진행된 투어에 반 이상은 못 알아듣고 정신없이 물을 먹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해냈다. 무릎이 다 까지고, 자꾸 자세를 틀려 가이드에게 혼났지만 결국 남들처럼 목표에 도착했다. 여행을 하니 살면서 못해본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세상이 신기하고 하루가 소중하다.
생각해보니 달랏은 그냥 그렇게 존재했던 거다. 수만 년 넘게 구름 위로 해가 떠올랐을 것이고, 폭포는 세차게 떨어졌을 거다. 며칠 머물다가는 여행자 처지에 이 도시를 함부로 평가해도 될까? 기대도 실망도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더럽게 보일지언정 저녁마다 사람들로 가득한 호수와 광장은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였다. 이 소박한 마을에 쓰레기를 잔뜩 버린 건 우리 같은 관광객일지도 모른다. 달랏의 이상한 매력은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게 했다. 호텔 사장님은 손수 전화를 걸어 우리의 버스 여정을 변경해주셨다. 이제 지도도 안 보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단골 식당에서 주문도 척척하고,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오토바이 사이로 물 흐르듯 건널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달랏은 봄의 향기를 더 진하게 풍겨 왔다. 사람이든 도시든 알아가는데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짧게 마주한 인상만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알긴 아는데 나이를 먹으며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본연의 향기를 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호찌민으로 가는 슬리핑 버스에 누워 이 글을 쓴다. 낯선 도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이 긴 여행이 끝나면 세상도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