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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May 08. 2024

가볍게 가볍게, 호찌민

휴직하고 세계여행 06

달랏의 일정을 마치고 호찌민으로 간다. 호찌민에서는 한국으로 짐을 보내기로 했다. 1년 여행 계획을 잡고 여러 벌의 옷과 혹시 필요할지 모를 물건들을 챙겼는데 결국 일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계 어디에서든 꼭 필요한 물건은 구할 수 있었다.

달랏에서 호찌민 가는 슬리핑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베트남에는 픙짱이라는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슬리핑 버스가 유용하다. 홈페이지에서 예매를 했는데 달랏에서의 일정이 이틀 늘어나 변경해야 했다. 친절한 호텔 사장님이 나서서 해주신다. 픙짱버스는 내가 있는 호텔까지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픽업 버스를 기다리며 호텔 사장님이 작별 인사로 코코넛을 하나 주신다. 아내와 코코넛 즙을 하나씩 마셨다. 

달랏 터미널에서 슬리핑 버스에 올랐다. 일반 버스 크기와 똑같은데 세 줄씩 2층으로 되어있다. 좌석은 기본적으로 눕게 되어있어 일반 의자처럼 앉을 수는 없다.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는 조금 좁게 느껴질 수 있다. 자리마다 커튼을 칠 수 있고, 물 한 병과 물티슈를 줬다. 신발을 벗어 비닐 봉투에 넣어서 탄다. 자리에 누워 먼 여정을 시작했다. 7시간 쯤 걸린다고 하는데 길을 보니 이해가 된다.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이고, 오토바이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 속도 내는 게 불가능하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신호가 온다. 분명 터미널에서 소변을 보고 왔는데 이상하다. 아내에게 카톡이 온다. ‘화장실 가고 싶어’ 아차, 코코넛 때문이구나. 

찾아보니 코코넛에는 이뇨 작용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휴게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산길을 달려서 그런지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는다. 화장실이 없다는 심리적 원인 때문인지 점점 괴로워진다. 픙짱버스는 운전기사 옆에 안내 승무원이 한 명 있는데 그에게 휴게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번역기를 돌려 물었다. 손가락으로 20을 가리킨 것 같아 20분만 참아보기로 한다. 30분, 40분이 지나도 휴게소는 나올 생각을 안 하고, 가방에 있는 빈 물병을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겨우 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후텁지근한 공기가 덮친다. 달랏과 공기가 전혀 다르다. 

화장실을 해결하고 버스에 다시 올랐다. 누워서 가니 훨씬 편하긴 하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호찌민에 들어오니 차가 몹시 막힌다. 건물도 높고, 차도 압도적으로 많다. 역시 대도시구나. 지도상으로 시내 외곽에 있는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간 정도가 지났다. 커다란 캐리어를 내리고 픙짱 픽드랍 버스를 찾았다. 나짱과 달랏에서는 묵는 호텔까지 픽드랍 서비스를 해주었고, 달랏 호텔 사장님은 우리가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라는 쪽지까지 적어주셨다. 쪽지를 들이밀며 숙소가 있는 ‘푸미흥’을 외치는데 다들 안 된다고 한다. 호찌민에서는 호텔까지 안 되는 건가. 당황하며 배회하는 우리에게 택시 기사는 계속 ‘딱시! 딱시!’를 외친다. 여차하면 우리 캐리어를 가지고 갈 기세다. 여기서 호텔까지는 꽤나 먼데…. 사무실에 들렀다가, 픽드랍 버스가 서 있는 기사들에게 갔다가 우왕좌왕했다. 역시 여행은 쉽지가 않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달랏 호텔 사장님을 연결하고 싶은데 내 폰은 데이터만 되지 전화도 안 된다. 겨우 버스 회사 직원에게 사정해 전화를 빌려 호텔 사장님과 연결했다. 한참을 통화하더니 우리에게 한 버스를 소개해주고 타라고 한다. 아마도 호텔까지는 아니고 가까운 지점까지 데려다 주는 것 같다. 

어둡고 낯선 호찌민 도심을 달리니 승객들이 모두 내린다. 지도를 보니 꽤 많이 왔다. 그랩으로 차량을 부르고 다시 짐을 싣고, 도심을 달려 호텔로 왔다. 여권을 제출하고 체크인을 하고 바퀴벌레가 먼저 반기는 복도를 지나 방에 짐을 풀었다. 달랏에서 오전에 출발해 한 끼도 못먹고 늦은 밤이 되었다. 여행은 이동의 연속이구나. 하루가 꼬박 걸렸다.     

호찌민에서도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지만 나짱에서 입은 화상이 아직 아물지 않았고, 뜨거운 대낮에 돌아다니는 건 지양하기로 했다. 푸미흥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한국으로 짐을 보낼 수 있는 우편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몇 주 하다 보니 필요 없는 옷가지와 물건들이 구분되었다. 아내와 신중하게 남길 것과 보낼 것을 정하고 무게를 재보니 보낼 짐이 거의 4키로그램 가까이 되었다. 아무리 바퀴 달린 캐리어라도 4키로그램의 무게는 꽤 크다. 우리의 여행은 단기 관광과는 달라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 기념품 가게에는 들어갈 필요도 없다. 꼭 필요한 식량과 세면도구 정도만 현지에서 사고 있다. 옷도 많이 필요 없었다. 며칠씩 입고 숙소에서 간단하게 손빨래한 후 널어 말리고 있다. 짐을 줄여도 여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릴 때만 해도 ‘물자를 아껴쓰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소유의 정도가 잘 사는(그렇게 보이는) 척도가 된 것 같다. 얼마나 많고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는가. SNS 시장의 성공은 이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마음을 이용하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비움을 배우고 싶었다. 여전히 배낭 하나로는 부족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만 물건을 비우고 덩달아 마음도 가볍게 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새처럼 가볍게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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