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07
호찌민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푸꾸옥으로 향했다. 그랩을 불러 호찌민 국제공항으로 가는데 여기 공항은 다른 공항과 달리 꽤 시내에 있다. 그만큼 가는 길 내내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외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건 낯선 경험이었다. 푸꾸옥은 휴양지여서 승객들에게 휴가를 떠나러 가는 설렘과 흥분이 엿보였다. 우리도 이번 세계여행에서 몇 개의 휴양지를 넣었는데 말 그대로 쉴 휴(休)자 휴직이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3년 일한 지인에게 푸꾸옥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푸꾸옥은 베트남 서남단에 있는 섬이다. 지리적으로는 캄보디아와 더 가까운데 남북을 길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다. 얼핏 보면 망토를 입은 사람이 손을 들고 책을 읽는 모습 같기도 하다. 푸꾸옥은 서쪽만 개발이 되어있고, 동쪽은 울창한 산림지대다. 길도 거의 하나나 다름 없어 여행자 모두 같은 길을 지나야만 한다.
푸꾸옥에서는 리조트에 머물기로 했다. 조식이 나오고 수영장까지 있는 3~4만원대 리조트가 많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첫 번째 숙소는 조경이 매우 아름다워 사진이 잘 나왔다. 방갈로형 숙소는 바닥이 타일로 되어있어 맨발로 다니기 어려웠고, 화장실은 야외여서 조금 낯설었지만 가격대비 괜찮았다.
해질 무렵 야시장을 찾아 걸어갔다. 동남아에서는 야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먹거리가 다양하고 활기찬 야시장을 좋아하는데 아직 대만을 넘어선 야시장을 찾지 못했다. 덥고 습해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야시장은 비슷한 음료와 비슷한 해산물을 팔았다. 진주와 땅콩이 유명한지 호객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꼬치구이와 철판 아이스크림 등을 다소 비싸게 먹고 바닷가를 걸었다. 현지인인지 베트남 관광객들인지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물 위, 바위틈에 쓰레기가 가득했던 것이다. 플라스틱 컵, 비닐봉지, 캔, 스티로폼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썩지 않는 것들이 쌓여있었다. 그러고 보면 길에도 쓰레기가 함부로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버린 건지 먼바다에서부터 떠내려온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름다워야 할 바다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아마도 해양 생물들이 그것을 먹고 또 죽고 할 것이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동남아의 쓰레기 마을을 자전거로 찾아다닌 신혜정 작가님의 책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나도 여행하며 세계의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굳이 쓸게 집하장에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다.
야시장을 찾아가는 길가에 지폐가 떨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유독 눈이 밝은 아내는 산기슭에 쓰레기들과 함께 나뒹구는 지폐들을 계속해서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100달러짜리다. 돈은 30미터쯤 계속 버려져 있었다. 100달러라니. 한 장에 13만원 정도 아닌가. 설마하면서도 일단 보이는 돈이니 주웠다. 열일곱 장이나 된다. 꽤 큰 돈인데 경찰서에 갖다줘야 하나.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짜겠지, 괜히 기대하지 말자는 머리와 다르게 신명난 몸짓으로 길가의 돈을 다 주워 왔다.
숙소에 들어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100달러와 비교해본다. 어라, 이것 좀 이상하다. 크기도 작고, 벤자민 프랭클린도 뭔가 옹졸해 보이고, 무엇보다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써있어야할 자리에 ‘Ngân hàng địa phủ’라는 말이 써 있다. 이게 뭐지? 성조까지 겨우 찾아 넣어 번역기를 돌려보니…. ‘지옥의 돈’이라 써있다. 섬뜩하다. 열심히 구글링을 해본 결과 ‘조스페이퍼’라고 장례식 또는 제사 때 망자에게 보내는 돈인 듯하다. 함부로 주웠다가는 부정탈 수도 있다는 말에 기분이 묘해진다. 역시 진짜일 리가 없지. 우리와 다른 풍습에 순진한 여행자는 우스꽝스럽게 속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