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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an 17. 2020

울릉도(1)

울릉도 기행

아주 오래 전의 얘기다.

대학 입학한 그해 1976년 여름 방학이 시작될 즈음,

첫 대학생의 여름방학을 뭐할까? 어디 여행을 가볼까?

이러다가 나를 포함한

4명이 의기투합하여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가기 힘든

동해의 외딴섬 울릉도를 가기로 했다.

당시에는 돈 없이 빌어먹는 무전여행이라는 것도 있었고, 요새는 택도 없지만 당시에는

대학생이라는 프리미엄도 있었고

낭만도 있었던 시절이었니라.

요새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던 시절이다.

뭐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고 단지 울릉도를 한번 가보고 싶어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지금이야 울릉도 가는 길이 강릉, 묵호, 포항 등에서 쾌속 페리가 다닌다만

40년 전 울릉도 가는 길은 포항이 유일한 출입구였다.

일단 포항까지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포항을 가는 길이 그리 쉽지 않다.

용산에서 대략 20시간을 타고 갔었던 기억이다.

지금은 KTX로 2.5시간, 차 몰고 가면 4시간이면 된다.

물론 그때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특급 기차는 있었겠지만 당시엔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낭만을 즐기고자 그랬는지, 제일 싼 가격의 

보통열차(지금으로 치면 비둘기 호 정도?)

를 타고 갔다.

포항에서 하루 저녁 자고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인 청룡호를 새벽인지 이른 아침에 탔다.

배는 아마도 일본에서 여객선 운항하다가 중고로 사 온듯한 꽤나 낡은 배다

(지금의 쾌속선을 보니 아! 그때 그 배가 중고였지 않았나 싶은 거였지..)

속도는 10노트, 울릉도까지 기억으로는 12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나 싶다.

포항 항구를 출발한 청룡호는 2시간 정도 지나고 나니 앞에 울릉도가 보인다.

동해바다는 섬이 울릉도 밖에 없고 날씨가 쾌청하다 보니 빤히 손에 닿을 듯

보이는데도  10시간 정도를 더 가야 도착한다.

젊어서 그랬는가? 그 장시간을 배멀미를 한 기억은 없다.

40년 지난 이번에는 제대로 배멀미를 했다... 물론 토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속이 미싱 미싱 한 게 영 기분이 안 좋았다.

12시간 여의 항해 끝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배를 댈만한 부두가 없어서 배가 울릉도에 도착했어도 그냥 섬에 오를 수가 없었다.

청룡호 같은 대형 선박이 정박할 부두가 없었다.

주로 오징어 잡는 작은 어선만이 부두에 댈 정도의 작은 항구였다.

조그만 통통배가 청룡호에 와서 사람들을 여러 번에 나눠서 섬으로 옮겨주는 방식이다.

섬에 들어가려면 현지에서 청룡호에 오른 경찰관이 일일이 검문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리 보고 저리보고 따져 묻는다. 왜 왔냐? 오징어 잡으러 왔냐?

간첩이라도 색출할 요량으로 꽤나 깐깐하게 검문검색을 한다.

그 당시에는 다들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이고 젊은 우리들 역시 모두 장발인데

그게 특히 섬인 울릉도에는 단속대상이다.

행여 외지의 젊은이들이 섬에 들어와 순박한 섬 총각들 장발이라는 유행을 퍼트릴까 봐

단속을 하는 거다.

재수 없게도 일행 중 나만 장발단속에 걸렸다.

머리를 깎기 전에는 섬에 못 올라간다는 거다....

예까지 와 못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정사정한다. 

반드시 깎아야 올라간다고 하는 경찰 아저씨에게 사정해서

섬을 나가기 전에 반드시 깎겠노라고 얘기를 해서 겨우 통과해서 섬에 오를 수 있었다. 

대학생이라고 사정사정하니 봐준 것도 있었다.

작은 통통배에서 섬으로 올라가자마자 섬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애업은 젊은 아낙들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란다.

민박하는 집들이다.

요새야 호텔에, 모텔에, 펜션에 , 리조트에...

잘 곳이 널려있지만 1976년 그때는 그 정도밖에 없었다.

여관이라는 게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의 예산에는 그건 사치였니라...

당시에는 남편들은 오징어 잡이 배 타고 나가면 아낙들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야 했다.

집에 노는 방 있으면 관광객에게 방을 빌려주고 밥도 해주는 무허가 민박을 운영하는 거다.

도시에 살다온 그것도 서울서 온 우리들은 이러한 민박 호객행위가 익숙지 않다.

술집 삐끼들에게 당해서 살아와서 그런가?  처음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대했니라..

나중에 그것이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안순 간 

한순간 의심을 한 우리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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