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건조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시골 학생들의 겨울놀이는 단순했다.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논이 얼면 썰매도 타고
가끔씩 빈집에 들어가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방학
가장 신났던 놀이는 '불장난'이었다.
어른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불을 가지고 하는 놀이는
추위를 녹이기 충분했고,
뭔가를 구워먹을 수 있었다.
물론 살짝 스릴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 아래의 밭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쥐포를 구워먹고,
불을 가지고 쓰레기 등을 태우며 장난을 쳤다.
그 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한 녀석이
거센 바람을 등지고
불씨를 마른 낙엽 속에 던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바람을 타고
어른 키 정도로 옮겨붙었다.
주위에서 함께 놀던
6학년 형들 두 명과 5학년 친구 세 명,
3~4학년 동생 서너명이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불씨는 바람을 타고
큰 길을 넘어 야산으로 옮겨붙었다.
우리는 너무나 무서웠다.
잠시 후에 마을 사이렌이 울렸다.
동네 어르신들이 달려오셨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수십명의 어르신들이 달려오셨다.
불을 끄기 위한 각종 농기구들을 들고
마을에서 달려오시고 있었다.
우리 친구들 모두는 불을 끄다가
그 장면을 보고 어른들께 혼날까 무서워서
각자 집으로 도망을 쳤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는 길에
멀리서 소방차 소리까지 들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혼이 빠진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뭔가 의심이 났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방금 전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급하게 이장님을 찾아나섰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혹시나 감옥에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살포시 떨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행히 1시간만에 산불이 꺼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그날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친구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10명의 친구들은
조용히 산주인 댁을 찾았다.
다행히도 산 주인 어르신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기로 하시고
앞으로는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타일러주셨다.
경찰까지 왔었지만
시골의 훈훈한 인심으로
꿀밤 한 방으로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산을 찾았다.
산의 절반 정도가 검게 타버렸고
묘지도 검게 타버린 곳이 일부 보였다.
우리의 작은 실수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지는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는 불장난을 하지 않았다.
불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35년 전 있었던
산불의 추억.
내 어린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아픈 추억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