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은 오래전부터 많은 선비들이 공부를 했던 기가 좋은 명산으로, 원래 이름은 광여산(匡廬山)이었다. 이 산에는 특별한 전설이 하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신해 왔는데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지나갈 때는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산속의 숨은 사람들을 가려 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광여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덕유산(德裕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덕유산 기슭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 자연휴양림. 우리 가족이 그곳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중순이었다. 지난봄에있었던 교통사고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우리 가족에게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했다. 사고로 부서진 차량 수리가 끝나고 2달 만에 자동차를 만나는 날, 우리 가족은 덕유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과 대전을 지나서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무주 ic를 통과했다. 그리고 무주 리조트와 시원한 구천동 입구를 지나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최종 목적지인 덕유산자연휴양림이 있었다.
입구를 지날 때 첫인상은 그냥 소박했다. 국립공원 덕유산의 규모만큼 화려한 휴양림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기대만큼 큰 휴양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졸졸졸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어 아이들과 물놀이하기에 적당했고, 곧게 뻗은 낙엽송과 잣나무들이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냥 편안하게 쉬어가기 좋은 포근하고 소박한 그런 숲마을이었다.
입구에서 키를 받고 오늘 예약한 고로쇠 방으로 차를 돌렸다. 살짝 내리던 비가 어느 순간 굵은 빗줄기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봄비였다. 우리 방은 가문비 방과 함께 휴양림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 숲 속의 집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숙소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찾는 자연휴양림. 사고로 인해서 2~3달 정도는 방문하지 못했던, 그리웠던 숲 속의 집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찐한 나무냄새가 느껴졌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고로쇠 방은 아담했고 하룻밤 즐기기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특히 탁 트인 테라스가 맘에 들었다. 밖에 나가서 하늘을 바라보니 겨울의 옷을 벗고 초록으로 갈아입는 숲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멍하니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행복했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잠시 밖으로 나가보았다. 휴양림에는 중간중간 예쁜 숙소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듯 초록 뒤에 숨어있었다. 어느 숙소라도 편안하게 숲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다. 특히 계곡 양쪽으로 널찍한 산책로가 있었는데 산뜻한 숲의 공기를 마시며 휴양림 한 바퀴 도는 최고의 산책로였다.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서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찾았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었다. 숙소에 두고 온 것이었다. 때문에 그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없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산림청 사진을 추가했음)
덕유산 자연휴양림 풍경 (자료:산림청)
산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트리로 이용되는 독일가문비나무 숲길이 었다. 가문비나무는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의 최대 자랑이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나무의 원산지는 독일이다. 곧은 원뿔 모양이 아름다워서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흔히 이용하는 나무다. 독일가문비나무가 덕유산에 뿌리를 내린 것은 1931년. 당시 일본은 홋카이도제국대학에 의뢰해 외래 수종의 생육에 적합한 지역을 찾기 위해 시험 삼아 이 일대에 독일가문비나무를 인공조림했다고 한다. 식민지의 땅 하나라도 더 수탈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100년 후 200여 그루의 독일가문비나무는 덕유산의 명물이 됐다. 사계절 최고의 풍경을 선물해 주지만 특히 겨울에는 근사한 북유럽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탐방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덕유산 자연휴양림 겨울 풍경 (자료: 산림청)
휴양림 구경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덕유산자연휴양림 근처에는 다양한 맛집들이 있었다.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닭볶음탕이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시원한 계곡을 배경으로 쫀득쫀득하고 매콤한 최고의 토종닭볶음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특히 매콤한 소스에 밥을 비벼 먹는 그 맛은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정문 바로 앞에도 깔끔한 곰탕집이 있어서 아침에 부담 없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담은 덕유산 자연휴양림. 여름의 시원한 계곡과 맛있는 전라도의 토종 음식이 생각난다면 이번 여름 꼭 한 번 들려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