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아침 일찍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서둘러 마을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하얀 먼지를 내면서 달려오는 7시 50분 버스에 올랐다. 반갑게 맞아주는 버스 안내양 누나에게 60원짜리 회수권을 주면 "오라이(all right!)"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는 출발했다. 울퉁불퉁한 신작로 비포장을 따라서 장고개와 지정리, 양지마을을 지나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혹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버스가 수렁에 빠져서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미끄러워서 운행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끔씩은 펑크가 나서 운행이 중단될 때도 있었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 긴 거리를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뒷동네부터 걸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따라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얘기 나누며 학교로 걸어가던 것이 그리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1983년. '우리들은 1학년' 책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학교 공부가 시작했다.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등 그림 가득한 책을 보면서 선생님이 전해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받아쓰기하다 보니 어느덧 여름 방학이 왔다. 여름 방학에는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산과 들을 다니며 놀고 또 놀았다.
방학 마지막 날에 밀린 그림일기와 탐구생활, 곤충 채집을 하느라고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2학기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무슨 일인지 집 앞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나를 아껴주시던 증조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것. 처음으로 접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조문을 왔고, 나 또한 며칠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나의 초등학교 1학년은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1984년 나는 2학년이 되었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시작된 구구단 외우기와 2자리 수 뺄셈 처음 접해보는 복잡한(?) 산수 계산이라서 결코 만만치 않았다. 첫 수업 시간, 제대로 맞춘 문제가 거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게로 와서 "수요일 수업 마친 후에 나머지 공부할 테니 어머니한테 도시락 싸달라고 해"라며 조심스럽게 말씀해 주셨다. 초등 2학년부터 나머지 공부라니 사실 살짝 부끄럽고 속상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했다. 어머니는 조금 실망하신 듯했지만 알았다며 "무슨 반찬 먹고 싶냐"라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계란 반찬 먹고 싶다"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하신 아버지는 나를 부르셨다. 자전거 뒤에 짐통에서 작은 도시락통 하나를 꺼내주셨다. 양철로 된 캐릭터 도시락통이었다. 도시락 뚜껑을 여니 2/3은 밥, 1/3은 반찬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도시락통을 보니 아이가 아닌 형 누나 같은 학생이 된 듯했다. 솔직히 만화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가방 옆에 도시락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학교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청소가 끝난 후에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열었다. 하얀 쌀밥과 계란말이가 예쁘게 들어있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맛보는 도시락이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나머지 공부를 하는 같은 반의 3~4명 모두 학교에서 먹는 점심 도시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나머지 공부. 선생님은 차근차근 산수식을 설명해 주셨다. 그날따라 이해가 쏙쏙 되는 느낌이랄까. 수업 후에 선생님이 주신 문제를 너무 빠르게 풀어버렸다. 선생님은 나의 풀이를 보시더니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여주셨다. "이제 나머지 공부 안 해도 되겠어. 잘했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나머지 공부였다. 때문에 도시락통은 고학년이 될 때까지 부엌 찬장에 조용히 보관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지친 어머니 얼굴에서 한환 미소가 퍼졌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뭐 먹고 싶냐며 내게 물으셨다. 이번에 내가 답한 것은 "초콜릿".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 가게에는 팔지 않기에 아버지는 내일 시내 슈퍼에서 사다 주겠다고 내게 약속을 했다.
다음 날 저녁 아버지는 퇴근이 늦으셨지만 나는 초콜릿을 기대하며 졸린 눈을 참아가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밤 9시가 조금 넘어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셨다. 곧장 달려 나가서 "다녀오셨습니까?"라고 크게 인사를 하니 아버지는 주머니 안쪽에서 작은 초콜릿 하나를 꺼내 주셨다. 우리 동네 가게에 없고, 학교 앞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초콜릿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입 물어보았다. 처음으로 맛보는 그 달콤함. 상상 그 이상이었다. 너무 맛있었다. 그 날 나는 온 세상을 가진 듯 너무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