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정리를 잘합니다.
어린 날에 깨달은 현실
"책걸상 정리를 잘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통지표에 담임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한 문장이다. 1년이라는 시간을 지켜봤지만 너무 조용하고 내성적이기에 담임 선생님께서도 나에 대해 뭐라고 적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지켜볼 때마다 아무 말없이 공부하고, 일과가 끝나면 청소를 마친 후에 조용히 책걸상 정리를 하고 하교하는 그런 모습.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나는 사실 친구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나에게도 동네 또래 남자 친구들이 있었지만, 한 친구는 1학년 겨울에 연탄가스를 마시고 안타깝게도 일찍 하늘나라로 떠났고, 나머지 또래 친구들도 입학하자마자 큰 도시로 떠나가버렸다. 여자 친구들이 몇 명 있었지만 서로 노는 방식이 달라서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3학년부터는 동네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지만, 거칠게 노는 동네 형들과 같이 다니기에는 소심한 내 생각이 따라주지 않았다. 때문에 혼자 학교를 다니거나 1학년에 입학한 여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그 당시 나는 그냥 조용하고 소심한 그런 아이였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투명인간 같은 학생이라고 할까?
그런 소심쟁이 나에게 반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은 월반장 제도가 운영되었다. 3월, 4월, 5월, 6월, 9월, 10월, 11월, 12월 모두 8번의 반장(남자), 부반장(여자)이 선정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6월 반장이 되었다. 반장 일은 소심쟁이 나에게는 모든 것이 떨리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남들 앞에 나서본 적이 없기에 모든 것이 두려웠다. 월요일 조회시간에 앞에 서 있는 것부터, 선생님께 인사하고, 학급 회의 주도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두려웠다. 5월의 마지막 날에는 반장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아직도 그날 밤이 기억이 날 정도다.
반장이 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은 부모님한테 집으로 한 번 찾아와 달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다른 반장 친구들에게 물으니 그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이미 선생님 댁에 방문했고, 그때마다 선물을 가지고 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집에 와서 바로 어머니에게 전하니, 어머니는 뭔가를 고민하셨다. 어떤 것을 가지고 가야 할지, 아니 그보다는 언제 만나야 할지였다. 부모님 모두 일을 하고 계셨기에 평일에는 시간이 없고, 주말에도 농사 때문에 쉽지 않았다. 늦은 밤밖에 시간이 없었던 듯했다. 다음 날 어머니는 동네에서 수확한 신선한 딸기 한 박스를 사서 퇴근한 아버지의 자전거에 실었다. 그리고 선생님 댁에 전화를 하여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에 빨기 한 박스를 건네주시고 돌아오셨다. 사실 그분은 두둑한 촌지를 원하셨지만 우리 집은 그냥 나무로 된 딸기 한 박스를 건네드렸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돌아와서 그냥 인사하고 딸기 박스만 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게 전부였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 선생님은 더 이상 우리 부모님을 찾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반장과 부반장 부모님들이 자주 학교에 찾아오셨다. 그때마다 두 손 가득히 양주며 선물을 들고 오셨다. 내가 처음으로 느낀 충격적인 학교의 모습이었다.
그 덕분인지 그 친구들은 자주 칭찬도 받고 때로는 학교에서 주는 특별한 상도 받았다.
자연스럽게 그 이후로 선생님은 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드신 듯했다. 반장을 마친 후에 나는 그냥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로 돌아갔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리고 마지막 통지표에 이렇게 써주셨다.
"책걸상 정리를 잘합니다"
그날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내가 그런 것을 원치 않았고, 부모님 또한 학교에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