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대학생활
대학을 다니면서 꼭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숙사 생활이었다. 90년대 중반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처럼 대학시절 기숙사에서의 알콩달콩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내가 휴학을 했던 사이에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새롭게 생겼고 운이 좋게도 3학년 2학기에 나는 기숙사에 입소할 수 있었다.
내 생애 첫 기숙사 생활의 시작. 설레는 마음으로 남자 기숙사 104호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 안을 둘러보니 책상과 침대로 이루어진 시스템 가구가 방 양쪽으로 각 2개씩 놓여 있었다. 4인 1실인 듯했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조용히 방문이 열렸고 커다란 체격의 후배 한 명이 들어왔다. 건축학과 01학번 2학년 후배였다. 1학기 동안 함께 방을 쓸 롬메이트였다. 잠시 후 2명의 룸메이트가 순서대로 방으로 들어왔다. 입소하는 날 처음으로 마주한 4명의 룸메이트,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소개했다. 안동이 고향인 경영학과 97학번(3학년)과 울산이 고향인 건축학과 01학번(2학년), 화학공학과 02학번 새내기. 그리고 95학번인 나까지 모두 4명이었다. 역시나 내가 방에서 제일 선임이었다. 서로 맥주 한 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싸우지 말고 한 학기 동안 잘 보내자는 다짐과 함께.
그렇게 시작된 3학년 2학기에는 강의실과 도서관, 기숙사를 오고 가는 것이 그 시절 내 삶의 전부였다. 도서관에 들려서 매일매일 4~5개의 신문을 정독하고 기사를 분석하며 정리했다. 광고학 수업을 들으면서 광고기획을 하고 상품별로 소비자를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공대생답게 자동차 구조학이나 공학 설계론도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매일 도서관에 머물다가 오후 9시쯤에 기숙사에 돌아왔고 후배들과 함께 치맥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는 경영학과 97학번 후배 녀석이 자신이 경험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1년 동안 호주에서 보냈던 이야기들. 동부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호주 여행을 다녔던 얘기였다. '나도 한 번 떠나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돈도 벌고 처음으로 해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했다.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하면서 공모전 도전도 시작했다. 나의 전공을 살려서 아이디어 공모전이나 광고 공모전을 찾았다. 그때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공지 하나. 삼성전자에서 YPM(Young Plus Membership) 아이디어 공모전을 한다는 것이었다. 수상자가 되면 1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대학생 멤버십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 조사부터 상품 기획, 그리고 방학에는 연구소에서 대학생 인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합격만 된다면 특별한 경험이 될 듯했다. 고민 끝에 모듈 방식의 자판기식 냉장고와 통합형 빌트인 식탁을 제안했고 12월 말로 예정된 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삼성전자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확실히 떨어진 듯했다
이제 겨울방학을 앞두고 기숙사 방을 빼야 할 시간. 건축학과 다니는 후배 녀석과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술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나는 1월에 다시 휴학계를 내고 1년 동안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계획이었고 그 녀석은 내년 봄에 군입대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거하게 취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YPM 1기에 뽑혔다는 것이었다. 아이디어상을 받는다고 했고 며칠 후 시상식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와우~ 합격이다"라는 환호성이 터졌다. 후배 녀석도 함께 기뻐해주었다.
YPM에 합격하면서 나의 1년 계획도 완전히 달라졌다. 다음 해 1월에 떠나기로 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잠시 늦추기로 한 것. 대학을 다니면서 1년 동안 멤버십에 참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지막 남은 대학생활 1년. 내게는 특별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