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그날들의 추억과 또 한 번의 휴학
2002년은 내 삶의 변곡점이었다. 내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잊지 못할 기억들이 가득한 한 해였다.
2002년의 시작은 YPM이라는 삼성전자 멤버십 프로그램이었다. 1기로 뽑힌 40명의 멤버들은 4개 조로 나눠서 한 학기 동안 삼성전자에서 기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실제 삼성의 상품기획자와 엔지니어 멘토들을 만나서 아이디어 기획부터 제품화하는 방법을 배웠고 분기별로 중역들 앞에서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실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산업디자인부터 마케팅, 경영학까지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열정 가득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름 방학에는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기반기술연구소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대기업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도 있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은 2002년 월드컵의 추억이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을 월드컵과 함께 했던 것이었다. 시험 기간이라서 광화문 광장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대학교 강당과 대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필승 코리아'를 미치도록 외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6강 이탈리아전이었다. 기말고사가 거의 마무리된 6월 18일 늦은 저녁 8시 30분. 대학교 운동장 대형 스크린 앞에서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응원을 했지만 결국 1:0으로 지는 분위기였다. 친구들과 체념하면서 술 한 잔 하러 자리를 뜨는 순간, 후반 43분에 설기현이 동점꼴을 넣은 것이 아닌가? 헉 1:1 동점. 우리는 그냥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후반 연장전에서 안정환의 쐐기콜로 드라마 같은 대역전극이 일어났다. 그때의 환호성을 아직도 잊지 못할 정도였다. 내 생에 가장 멋진 경기 중의 하나였다. 그날 밤 나는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거칠게 쉰 내 목소리를 달랬다. 그리고 이어진 8강과 4강 경기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붉은 악마가 되어서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가장 뜨겁고 모든 것이 즐거웠던 여름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는 다시 휴학을 했다. 미뤄두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문이었다. 비자 유효기간이 1년이었기에 늦어도 12월 중순에는 출국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기도 다시 휴학계를 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1년 반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모아둔 돈이 거의 다 떨어지게 된 것. 호주에 갈 항공권도 구매할 수 없었고 입국해서 1달 정도 머물 방을 얻을 돈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25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했다. 그 정도만 있으면 나머지는 호주에 도착해서 일자리를 잡고 벌면 충분히 생활비를 감당할 듯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천안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GS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편의점이 끝나면 인근 영어학원에서 기초 회화를 배웠고 가끔씩 서울에 올라와서 YPM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다. 시급 3000원 정도로 하루 9시간 일을 하면 27,000원 정도. 30일을 하면 한 달에 8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9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 동안 편의점에서 돈을 모아야 했다. 덕분에 1년짜리 왕복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었고 1년 여행자보험과 함께 100만 원 정도를 호주 달러로 환전할 수 있었다.
드디어 2002년 12월 10일, 나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커다란 배낭과 함께 작은 캐리어에 1년 치 나의 생활용품을 모두 담았다. 처음 만난 여권과 1년짜리 오픈된 비행기표, 여행자보험 카드와 호주 달러 1,200불(약 100만 원), 비상시를 대비해서 만든 신용카드. 그게 내 비상 주머니에 든 전부였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호주의 퀸즈랜드 주의 케언즈. 단순히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대도시에 비해서 물가가 싸고 한국에서 가까워서 택한 곳이었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을 경유해서 다시 호주 케언즈로 향했다. 처음 타보는 국제선 비행기. 모든 것이 서툴렀고 실수 투성이었다. 식사 주문도 힘들었고 경유와 입국 수속 모두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2002년 12월 11일 새벽 5시 호주 케언즈에 첫 발을 내디뎠다. 내 삶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