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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빠지다

독서왕이 된 복학생

by Wynn

5년 만에 다시 밟은 3월의 캠퍼스. 콩닥콩닥 설레는 마음으로 정문으로 들어섰다. 화사한 봄햇살과 산뜻한 캠퍼스 내음이 가득했다. 못 보던 고층 건물이 휴학했던 사이에 생겼고 새로 생긴 상점들이 학교 주변 화려한 번화가를 채우고 있었다. 캠퍼스 가로수 을 걸을 때면 밀레니엄 학번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고, 낯익은 95학번 동기들의 모습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익숙하지만 새로웠고, 새롭지만 익숙한 대학 캠퍼스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나의 마음은 '의욕 가득, 열정 가득'. 첫 수업은 복학생답게 강의실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열심히 듣고, 열심히 질문하며, 또 열심히 적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서 그럴까? 복학을 하고 한 달 동안은 진심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항상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그동안 밀렸던 책들을 매일매일 읽었다. 처음에는 유체역학이나 자동제어 같은 전공 도서를 주로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미도 없었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공학보다는 다른 종류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문사회와 경제, 역사와 철학, 소설과 수필 등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책들을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밤늦게까지 중앙도서관에 남아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친구들은 공대도서관에서 전공책을 공부했지만 나는 멀리 떨어진 중앙도서관에서 쓸데없는 잡학 공부에 빠져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


가끔씩 엉뚱한 상상을 하며 공부에서의 탈출도 시도했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하다가 갑자기 강원도 백숙이 먹고파서 동기 녀석과 함께 영월 동강까지 차를 타고 달려간 적도 있었고, 갑자기 신선한 회와 소주 한 잔이 생각나서 소래포구로 친구들과 우르르 떠나기도 했다. 때론 밤늦게 도서관에 있는 친구 녀석들을 태우고 새벽 한강공원으로 가서 밤새 맥주캔을 마시던 기억도 있었다. 솔직히 나는 공부보다는 엉뚱한 짓(?)을 즐겼던, 조금은 특이한 복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살짝 타오른 공부 열정 때문인지 중간고사는 B +정도의 적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계공학? 내 적성에 맞나?' 조금은 생뚱맞지만 내 삶에 본질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또 고민의 시간이 돌아왔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책을 읽었다. 인생 선배들의 에세이를 비롯하여 동서양 고전들을 읽었다. 정독은 아니었지만 빠르게 최대한 많은 책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내 삶의 길을 찾아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찾아낸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항상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 세상의 고정관념을 당당히 깨고 뭔가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언론홍보분야가 내 적성에 맞는 일처럼 보였다. 그렇게 관련 분야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기자나 PD, 광고회사 입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대 전공을 바탕으로 기술전문기자나 다큐 PD, 신제품 기획이나 광고 분야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서관 속에서 내 삶의 새로운 좌표를 다시 찍었다. 그해 여름 방학에는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일찍 자리를 잡고 종일 언론정보분야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집중했다. 전공분야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듯 한 기분이었다.


방학이 끝날 즈음 나는 조용히 사회과학대 안에 있는 언론정보학과 사무실을 찾았다. 3학년 1학기를 마친 상황이라서 복수전공은 어렵지만 부전공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담당직원분께서는 부전공은 가능하다며 내게 지원서를 하나 건네주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언론정보학을 부전공으로 신청했고 다행히 정원이 마감되기 직전이었기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언론정보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삶에 있어서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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