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스 우승과 공군 30개월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문제의 그 녀석이 떠난 이후, 우리 부대는 다시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 웃음소리 들렸고, 일과 이후에는 잔잔한 기타 소리가 내무반에 울려 퍼졌다. 더욱이 새로운 젊은 부대장이 부임하고 나이 어린 또 다른 신병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TMO의 분위기도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나 또한 전역을 두어 달 남긴, 뒷방 최고참이 되면서 서서히 업무에서 열외(?)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부대가 국방부 직할(육해공군 통합) 부대로 바뀌면서 공군과 해군도 육군처럼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 이전까지는 유격과 혹한기 훈련은 육군들만 참여를 했지만 1999년 9월부터는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설마 제대 두 달도 남지 않은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군복무 28.5개월 차. 복무기간 26개월인 육군과 28개월인 해군에게는 없는 시간이었다. 같이 입대한 육군이나 해군 애들은 이미 제대한 시기. 그런 고참 사병에게 유격 훈련을 시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역시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부대장은 "부대 최고참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직접 나에게 유격 참여를 지시했다. 나는 말년에 유격 훈련을 끌려갔다. 나는 그날 지옥을 경험했다. 처음 배워본 유격 체조와 수없이 이어진 선착순 달리기. 제대가 코 앞인 내게 그 훈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참혹하게 망가지고 참혹하게 무너졌다. 흙탕물을 마시고 진흙탕에서 구르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공군 신병 훈련소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 생애 최악의 훈련이었다.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갑작스럽게 생긴 공군 VIP 행사 덕분으로 저녁 늦게 훈련을 마무리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은 천운이었다.
어찌 되었건 9월 중순의 유격 훈련을 마지막으로 파란만장했던 나의 군생활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1달 동안은 그동안 정들었던 공군본부의 지인분들과 저녁 식사가 이어졌다. 장교도 있었고 부사관도 있었고 군무원도 있었다. 다들 그동안 고마웠고 고생했다며 제대 이후의 생활을 응원한다고 했다. 그분들 중에 한 분은 훗날 공군참모총장이 되셨고, 또 한 분은 참모차장이 되셨다고.
마지막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서일까? 내가 응원하는 한화 이글스가 10월 29일 롯데를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83년 야구가 시작되자마자 OB와 빙그레, 한화의 팬으로서 우승을 꿈꿨지만 이제야 나의 팀이 우승하는 것을 본 것이었다.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마지막 전역 휴가를 떠나면서 정들었던 두계역 TMO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예비군복을 입고 역사무소에 들려서 역장님과 역무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경력(?)을 살려서 철도청에 지원해 보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또한 신병 때부터 여러모로 도와주신 역 주변의 상가들에 들려서 제대 인사를 드렸다. 이제는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탈 시간, 후임병 서너 명이 역 플랫폼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해 줬다. 그리고 열차가 떠나려는 순간, 내게 건네는 마지막 경례. "필승"! 그렇게 나는 정들었던 두계역을 떠나왔다.
마지막 휴가를 마치고 11월 10일 성남에 있는 서울 공항으로 들어갔다. 공군으로 입대했기에 제대 신고는 공군부대에서 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국군수송사령부에서 가까운 서울공항 출장자 숙소에서 어색한 하룻밤을 보내고 1999년 11월 11일 오전 9시 나는 제대 신고를 했다. "필승 병장 000은 1999년 11월 11일부로 제대를 명 받았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전역 신고를 받은 수송부대장은 공군 군수사령부에서 나를 두계 TMO로 보내주셨던 조 00 중령. 1997년 내 직속상관이었다. 그분은 웃으면서 내 전역 신고를 받아주셨고 간단히 차 한 잔을 마신 후에 나는 부대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나의 군대생활은 끝이 났다. 성남 공항의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기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냥 담담할 뿐이었다. 입대 첫 날밤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에 서있자니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잠시 멍하니 흐릿한 가을 하늘을 바라봤다. 저 멀리 CN235 수송기 한 대가 활주로를 이륙하면서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나 또한 그 수송기처럼 새롭게 이륙을 준비할 시간이 온 것이었다.
1997년 5월 12일과 1999년 11월 11일. 처음에는 암흑 같은 시간이었지만 어찌 보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자양분이 된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