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thinking by lego play
세기의 장난감 덴마크의 '레고'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한 번쯤 사게 된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레고 블록으로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과 재미는 어른들도 레고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한 번은 선물 받은 레고 스포츠카를 장장 몇 시간을 걸쳐 완성했는데 엔진을 만들고 바퀴를 연결하는 것만도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레고의 장점은 어떤 시리즈를 사도 호환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시리즈의 블록을 사용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면 의외로 좋은 완성물을 얻기도 한다. 설명서를 따라 하며 결과물이 정해진 '프라모델'과는 확연히 다른 묘미가 있다.
그런데 단순히 개인의 만족을 위해 존재했던 장난감 레고가 소통의 채널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하여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 Lego serious play ) '로 90 년대 중반 레고사에서 창의적인 경영전략회의를 위해 스위스 국제 경영개발원 교수진들과 함께 개발한 게임이다.
게임 방법은 기업에서 전략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참석자들은 회의 안건에 대해 3 분 정도 고민할 시간을 갖는다. 이후 자리에 놓인 레고 키트로 각자의 의견을 표현한다. 자기표현이 강한 사람이나 직급이 높은 상사가 주로 회의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어, 소극적이거나 직급이 낮은 직원은 적극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어서 각자가 만든 레고를 통해 동등한 발언권을 얻는 효과가 있다.
또한 구두상에 들은 얘기는 저마다 이해도가 달라 회의가 끝나도 추가적인 정리가 필요한데, 참석자가 만든 '레고'라는 상징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이는 비언어적인 상징물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작년에 B 글로벌 기업에서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를 맡게 되었다. 정형화된 교육 콘텐츠는 정해졌는데 뭔가 재미있으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를 활용해서 '책임감'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면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했다.
교육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파트너와 함께 각자가 느끼는 '책임감'을 레고 블록으로 표현해 보았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레고라 다소 어색했지만, 조각들의 결합이 반복되니 점차 속도가 붙었다. 파트너도 옆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는데 설명을 해주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정확히 알긴 어려웠다.
서로에게 '책임감' 레고를 설명했고 단순히 말로만 듣는 것과는 전달력 부분에서 확연히 달랐다. 특히 내가 만든 레고를 본 파트너가 또 다른 해석을 덧붙이니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는 효과도 있었다. 일종의 '비주얼 싱킹 ( Visual Thinking ) '으로 말이나 글자보다 그림 혹은 상징물이 본인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더욱 빨리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위의 게임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레고 블록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원하는 블록을 뒤져서 고르고 또는 재조립하는 과정이 사뭇 진지하다. 서로의 작품?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힐금 훔쳐보는 모습 속에서 경쟁심도 엿보인다.
각자가 만든 '책임감 레고'를 돌아가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양한 모습의 완성물과 어우러진 진정성 있는 해석들은 지금도 필자에 뇌리에 남아있다.
어느 임원의 해석이다. "제가 만든 블록은 우리 회사입니다. 맨 위에 있는 인형이 저예요. 직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하고요. 다양한 색깔의 블록은 우리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로 뭉쳐져 있죠. 탑처럼 쌓여있는 것은 조직의 지위체계를 의미하고요. 회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에 바퀴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저의 책임감이에요"
조직내의 창의적인 소통방식으로 위의 레고 게임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서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정착되어 있다면 굳이 장난감을 활용할 이유는 딱히 없다. 하지만 동료들의 직장관와 직업 철학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때, 이처럼 좋은 도구는 없을 듯하다.
이제 레고 한판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