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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지순 Jan 24. 2018

풀리지 않는 맛의 비밀

모 외식기업에서 비밀리에 임원을 찾았다. 비밀리에 임원을 찾는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업계에 소문이 돌아서 공공연한 비밀이 된다. 외식업계에 기라성 같은 임원급들이 해당 포지션에 관심을 가졌다. 임원급을 찾는 포지션은 사원, 대리급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인력풀(pool)이  많다. 채용시장은 마치 미래의 한국인 연령대별 인구 분포처럼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역피라미드 구조이다. 이유는 사회초년생은 경제상황이 어렵다 보니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에서 쉽게 이직을 시도하지 않고 중년층 이상은 이미 명예퇴직을 하였거나 본인이 현 직장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상황을 감지하고 이직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에서 임원을 찾는 이유는 몇 가지 고민에서 출발했다. 해외 라이선스로 유명 외식 브랜드를 한국에 론칭했는데 국내에서는 점포마다 맛이 다르고 해외 본사의 주력 상품과도 맛에서 차이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균질화된 맛을 구현할 수 있는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였다. 처음에는 메인 주방장을 해외 본사로 보내 조리법 교육을 시켰다. 하지만 동일한 재료와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도 맛에서 차이가 있었으니 단순히 주방의 몫만은 아니었다. 결국 전체적인 안목에서 맛을 조율할 전문가가 필요했다. 


맛이 단순히 주방의 몫만은 아닌 이유가 홀에 어떤 색의 조명을 쓰고 어떤 풍의 음악을 틀어야 고객이 가장 만족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가는 외식전문가들의 주된 고민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즉 식당에서 느끼는 맛은 미각이 주요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시각, 청각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 예로 코카콜라의 뉴코크 출시 사례는 맛은 '뇌가 느낀다'라는 결론을 가져왔다. 충성 고객들에게 한번 각인된 맛을 바꾸면 매출이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고객들에게 외면 당하기 쉽다.  


임원을 채용하는 프로세스는 일반 경력직보다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적합한 후보자를 찾는 시간을 포함해서 추천한 후보자와 채용 프로세스를 함께 진행하면 심지어 6 개월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번의 프로세스는 대표이사와 임원진 면접을 거쳐 마지막으로 회장 면접도 있어 설사 대표이사가 후보자를 마음에 들어해도 회장선에서 최종 탈락하면 채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임원급은 평판조회 과정을 반드시 거치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함께한 선배, 동료, 후배들의 말 한마디가 당락을 결정하는 큰 변수로 작용한다. 


대표이사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5 인이 선정되었고 회장 인터뷰를 차례로 진행했다. 필자가 추천한 후보자는 다른 후보자들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은 짧지만 외식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자신감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기업의 주된 숙제를 이분이 어떻게 풀지 매우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외식 브랜드의 점포수가 늘어나면 재료의 품질 유지와 맛의 표준화를 위해서 '센트럴 키친(central kitchen)'이 있어야 하는데 점포수가 적더라도 메인 점포에서 해당 기능을 담당해야 품질 유지가 가능하다. 센트럴 키친의 구축과 주방과 홀 직원 간의 호흡, 시기에 맞는 마케팅 전개 및 꾸준한 고객관리가 외식업의 기본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것만 갖추어지면 해당 기업에서 고민했던 맛의 표준화가 실현되었는가? 답은 국내에서의 표준화는 가능했지만, 결국 해외 본사와는 불가능했다. 이유는 첫째 '물'의 차이라고 한다. 어떤 물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지가 미묘한 맛의 차이를 가져온다. 둘째 '온도와 습도' , 음식을 만들 때의 환경적 요인으로 주방의 온도와 습도가 또한 맛을 좌우했다. 


해외 본사와 맛의 표준화는 이루지 못했지만 해당 기업의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신규 점포도 늘어나고 매년 성장하는 기업이 되었다. 콜라를 만드는 모기업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 20만 번의 시음회를 거치듯이 외식 브랜드에서 맛을 유지하고 높이려는 노력들은 오늘도 끊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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