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고무 Oct 20. 2023

나의 어린 동이에게

잊힌 자들을 위한 연대의 순간

나는 꽤 예전에 네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마 네가 10살쯤의 모습이겠지? 나는 너의 이모의 생애를 구술하러 혼자 목포에 내려갔고, 그날 처음 만난 나와 너의 이모는 오래된 한 아파트의 작은 거실에서 응접상을 앞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어.


내가 너의 이모를 인터뷰했던 건 이모의 오랜 노동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어. 작은 섬에서 태어나 거기서 생활을 일구고, 아픈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세 번의 큰 굿을 하고, 억척스럽게 아들 둘을 키운, 그래서 네가 마음이 많이 쓰인다던 너의 이모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서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는 않은 그 이야기들을 채록하고 싶었어.


이모의 이야기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들어가면 나오는 갈매라는 섬에서 시작했어. 먹고살기가 쉬운 곳이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어. 사내들은 바다에 나가 뱃일을 하고, 그걸 목포 시내로 가서 내다 팔며 식구들을 챙겼어. 바다에 나가기가 어려운 여자들은 바다에서 해초를 뜯고, 그걸로 죽을 만들기도 했다고. 가끔은 주변 섬에서 개발 공사가 있으면 거기에 나가 돌을 옮기고 하루 일당을 받던 삶. 바다에서는 해마다 태풍이 일고, 어떤 날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늘 집집마다, 혹은 동네 어귀에서는 굿판이 벌어졌다고. 그 당시 갈매 섬은 생과 사의 경계가 너무 가깝고 희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모의 그 가족 얘기 속에는 너도 있었어. 바다에 나가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위해 주방 한편에서 물을 떠다 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을 너. 기어코 찾아오는 깊은 밤과 멀리서 들려오는 굿소리, 창문을 들썩이는 바닷바람이 무서워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리고 있을 너.  너의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늘 그 섬을 벗어나기를 기도했겠지. 매일 쌀 대신 밀가루로 빚어 먹는 죽이 지겹고, 고단했겠지. 이모의 이야기를 타이핑을 하다가 눈물이 나왔던 건 이모의 삶이 너무 외로웠을 거라는 슬픔과 이모의 그 고단한 시절 옆에 있을 어린 너의 모습 때문이었어.


언젠가 네가 갈매 섬에 가보고 싶다고 할 때 그 빈 섬에 뭐 하러 가냐는 아빠의 핀잔을 나도 그냥 흘려들었고, 밀가루는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라면조차 싫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한 번도 왜 밀가루를 많이 먹었는지, 왜 싫어하게 됐는지 물어보지 않았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그 힘든 시절 얘기해서 뭐 하냐고 답하는 너에게 나는 더 이상 되묻지도 않았어. 나는 왜 그동안 어린 너를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네가 거쳐온 시간을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모의 입을 통해 학급에서 가장 작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너를 듣기 전까지 말이야.


이모는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대체 어디다 써먹냐고 물었어. 그러게, 아무도 관심 없는 너무나 주변적인 이야기이지. 집 안에서 가족들을 위한 노동을 하고, 희생을 하면서도 중심에서 밀려나고 지워지는 이야기들. 나는 아빠와, 아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일군 땅과 오랜 역사에 대해 할아버지네 작은 방에 누워 옛날이야기처럼 들으며 자랐지. 재밌고 멋진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사실 나는 그들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내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냥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심지어 다 자란 너조차 지우고 싶어 하는 어린 너의 이름을 한번 불러주고 싶었어. 어린 네가 자라 엄마가 되어 작은 나를 만난 후, 네가 나에게 늘 안전한 사랑만 줬듯이, 나도 작은 섬에 있을 어린 너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야. 어쩌면 지금 나의 엄마 안에 아직도 남아 있을 그 어린 10살의 너를 말이야.


그 시간을 버티고 살아낸 이모할머니를, 오래전에 떠난 너의 엄마를, 그리고 너를, 그 섬 안의 고된 삶들을 오래 안아주고 싶어. 늘 바깥으로 밀려나서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 때로는 부끄러워했을 삶의 모습들. 그들을 모두 갈매 섬의 한 작은 집에 있는 방으로 불러 서로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그 흩어진 이야기를 땋아주며, 그렇게 슬픔을 가만히 포개는 일을 해주고 싶어.


나는 요즘, 다 자란 너의 얼굴을 보면서 그때의 네 얼굴을 떠올려. 매일 생과 사가 오가는 작은 섬에서 오후의 작은 생계 노동에 고단해하고 있을 어린 너에게 가서, 어떤 밤에는 밖에서 들려오는 굿소리가 무서워서 혼자 두려워하고 있을 너를 안고, 어린 남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어디까지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 불안한 얼굴을 바라보고, 말해주고 싶어. 위로해주고 싶어. 안녕, 나는 먼 훗날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너의 먼 미래를, 그리고 다시 먼 과거까지 가서 아주 오래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야.


                                               제이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이전 07화 신과 퀴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