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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고무 Oct 20. 2023

신과 퀴어

다름이 다양성이 되는 순간

예배당에 갔다.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다. 마음이 가난한 한 영혼이 있었고, 절망 속에서 신을 믿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했다. (아멘) 그리고 한 청년은 명문대를 다녔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좌절했지만 기도를 했고, 응답받았고, 지금은 그 명문대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아멘) 십자가 아래에서 그들의 멋진 얼굴이 구원처럼 빛났다. 나도 기도했다. 잘 나가는 사업가와 명문대 교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기도했다.


세상이 미쳤다고 소리치며 두 손을 자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도를 멈추고, 다시 성서를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느린 혁명보다 빠른 축복을 원했다. 오늘의 안녕과 사지의 평안함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두 손을 더 높이 들었다.


목사님이 단상에서 내려와 무릎 꿇은 자들을 축복했다. 그는 기도하는 자들의 건강과 그 가족의 평안과 그 가족의 가족, 대대손손 축복을 기원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예배당 바깥에 있을 친구들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어둠 속으로, 기도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기도는 안식이요, 나의 피난처. 이렇게 계속 들어가다 보면 천국으로 이어지는 걸까?


▪︎

종로를 지나고 있었다. 내가 탄 버스 바깥,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외치는 듯한 마이크 소리도 들렸다. 사람들은 떼 지어 있었고, 무리는 점차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퀴어 페스티벌이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가 밀리자 불편하다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왜 저렇게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튀는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알 것 같았다. 사회적 시선 아래에서 쉽게 꺼내기 힘들었던 자신의 성정체성을 온전히, 더 격렬하고, 더 열심히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광장 안에서 그럴 수 있도록 허용된 날이었다.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더 이상하고 별나고 독특한 에너지로 ‘나다움’을 보여줘야 하는 날. 더 열심히 춤추고, 노래 부르고, 키스하며 “우리도 여기 있다”라고, “우리도 너희처럼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날. 그런데 왜 나는 늘 이렇게 크게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걸까. 왜 함께 춤추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는 걸까. 


J도 저기에 있을까. 춤을 추고 있는 무리들 사이에서 나는 J를 떠올렸다. J는 퀴어인 내 사촌동생이다. 그가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퀴어임을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그의 행동은 젠더적 관습에서 벗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맞이한 새로운 성 정체성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종종 친구들과 함께 걸그룹 춤을 추며 SNS에 공개적으로 올리기도 했는데, 커버 댄스를 추는 그는 그 누구보다 ‘디바’다웠고,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

나는 신을 믿는다. 그리고 퀴어들을 지지한다. 그래서 나는 불경스럽게도 교회에서 차별금지법 합법화를 위해 기도한다. 이래도 되나. 장로님과 목사님들이 나를 이해해줄까. 나는 내가 믿는 신은 그들이 어떤 성 지향성으로 어떤 성 정체성을 지니든, 사랑한다고 믿는다. 구별 없는 온전한 사랑을 믿는다.


기도를 하며 J를 생각했다. J가,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J가 더 아름다워지길, 더 열심히 누군가와 사랑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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