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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an 20. 2021

나도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

[한편보고서9] Collateral Beauty

"아픔에 수반하는 아름다움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만남은 대체로 우연이지만, 때론 운명적이다. 내가 찜한 콘텐츠, 시청 중인 콘텐츠, 무엇일 때, 어떠할 때 추천하는 수많은 작품을 미뤄두고 우연히 맞닥뜨린 이 영화. 발길 닿는 대로 향한 곳에서 보물 같은 맛집을 찾았다.


밝은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직원들 앞에 선 하워드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이유'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차려 먹고, 옷을 입고, 이곳(회사)으로 향하는 이유. 한 회사의 대표로서 그가 꺼내놓은 답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 시간, 죽음, 바로 이 세 개의 추상이라고.


"우리가 원하는 것, 가지지 못한 것, 우리가 구입하는 모든 게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갈구하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고, 죽음을 두려워해서죠"


그가 말한 세상과의 소통법은 딱 1년 후 버려졌다. 딸을 잃었고, 자포자기한 2년 사이 회사는 매각 위기에 처해있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멍하게 있다 사무실에서 도미노 놀이를 반복하는 게 하워드의 하루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치어 주기라도 바라는 듯 자전거로 차도 사이를 가로지르고 꿈에서 딸을 볼 때면 벌떡 일어나 알 수 없는 편지를 써 부친다.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절친이자 동업자인 휘트가 나락으로 향하는 친구(하워드)두고 볼 수 없어 클레어, 사이먼(역시 절친이자 동료)에게 묘안을 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물론 연민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고 10년간 일궈 온 회사를 잃지 않을 현실적인 방안이기도 했다. 하워드가 사랑과 시간, 죽음에게 편지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휘트는 우연히 만난 무명 배우 세 명을 고용해 하워드 앞에서 진짜인 양 연기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워드가 닿지 않을 추상을 실제로 마주해 (회사를 매각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길 바랐던 것이다.


마음에 박힌 장면들을 알리고 설명하는 대신 잠시 멈춤을 누르고 끄적인 메모들로 감상을 대신한다.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저마다의 문장을 찾기를 가만히 바란다.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보았다. 곁에 있었고 쫓아보냈다. 어떠한 아픔을 겪든 그들은 냉소적인 얼굴로 다가서서 나의 안일함을 꾸짖었다.
괜찮냐고 물어봐 줄 사람, 그리고 그 앞에서 솔직하게 고개를 흔들 용기.
삶과 죽음. 높은 천국과 깊은 흙 아래. 한때 머물다 가는 이 땅 어디에나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그것을 마주할 시간이 있다.
포기해 버리고 입을 다물지 않는 것.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지쳐있다고) 무엇이라도 말하고, 원하는 답을 구하거나 이겨내지 못해도 다시 손을 잡는 것. 그것이 시간을 살아내어 죽음 이전까지 할 수 있는 우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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