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드문드문 큰 따옴표 같은, 짙은 글씨의 목차처럼 짧은 시절을 대표하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의 책을 빌려 신상(?) 편을 읽을 때마다 황홀하면서도 기묘한 상상에 젖어들곤 했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가장 좋아했고, 각 신들의 약력에 따라 나름의 친밀감을 형성해두었다. 저 구름 위는 대기권이 아닌 올림푸스 신전, 이름 모를 세계 곳곳의 섬들은 신화를 잉태한 미지의 땅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을 읽고 '이전의 것'들을 다시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틀란티스는 더 이상 가수 보아의 노랫말이 아니라 실로 존재했던 거인의 나라였고, 지금의 나는 얼마만큼인지 모를 다생을 겪어 온 'n번째의 나'였을 거라는 그럴듯한 공상. 두꺼운 양장본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발견했을 때, 소장에 대한 욕구는 물론 얕은 잠을 자는 신화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은 설렘으로 구매에 망설임이 없었다. 집 책장에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는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 낡은 표지를 벗어나 새로운 옷을 입은 그의 거대한 세계를 다시 마주했다.
p287. "인생살이, 그거 어려운 거 아니야. 처음 백 년이 약간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아리스토파네스
p541.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제 자신의 신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여신은 행동하는 인간을 돌보실 뿐, 기도만 하고 있는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 -스퀼라
p783. 영웅을 영웅이게 하는 것은, 오랜 방황과 모험 끝에 그가 누리게 되는 행복이 아니다. 영웅의 모험은 행복에 이르는 도정이 아니다. 영웅의 행복은 또 다른 모험을 준비하는 순간의 짧은 잠과 꿈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 잠자고 오래 꿈꾸는 자를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잠과 꿈을 깨우는 자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영웅에게 '호사다마'는 일상적이다.
p839. "육신을 태우는 불씨는 그대 안에 있다. 그대를 쏘는 화살은 그대의 가슴에 있다." -케이론
p927.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죽음이 아니고 내가 아는 삶이다." -아르고스 왕
p990. 케위크스는 겉으로만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일 뿐, 사실은 늘 자신이 신들에게 무슨 죄를 짓지 않았을까, 신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실까,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정해져 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해서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지, 계속해서 행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의 뜻을 물어보고 싶어 했다. 왕비 알퀴오네는 그런 남편을 항상 이런 말로 달랬다. "행복을 느낀다면 그냥 느끼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서 안달을 내시는 마음자리에는 행복이 깃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기술은 발전이라는 표현 아래 많은 변화를 거치지만, 사람 그 자체의 '인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다. 아주 오랜 후에도 '그런 사람'은 있을 것이다. 종교의 영역을 떠나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기대나 믿음, 정면·반면교사의 고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나는 신화를 무척 좋아한다.
저자 이윤기는 말했다. 신화는 미궁이고,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며, 사람들의 원망(願望)이라고. 이렇게도 말했다.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신전을 찾는 일이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라고. 또 나만의 흑해, 나만의 쉼플레가데스(박치기하는 두 개의 바위섬)를 빠져나가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p1032. 나는 내 연하의 독자들을 향하여, 특히 좌절을 자주 경험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활을 겨누듯이 겨냥하고 쏜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먼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흑해와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 사이를 지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 시작 없이, 모험 없이 손에 들어오는 '금양모피'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도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물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신화적인 영웅들의 어깨에 무등을 타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내가 영웅 신화를 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