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그리고 상공연(上空緣)

[읽고보고서]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by 곰살

비행기가 헬싱키 반타공항을 막 떠나 올랐을 때부터 인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듣는 동현과 말하는 홍도의 시간은 비행기에서가 전부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먼저 검색해 본 것은 홍도도, 정여립도, 작가 김대현도 아니었다. 현재 헬싱키에서 인천까지의 비행시간이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직항은 없는 터라 경유 한 번이면 17시간, 두 번이면 20시간에서 40시간도 훌쩍 넘어간다. 책에 나온 대로라면 여덟 시간이었겠으나, 지금은 다르다. 만 하루 전후로 낯선 상공을 가르는 비행기 안에서, 동현과 홍도는 만났고, 나눴으며, 눈을 맞췄다. 낭랑하고 똑 부러진 홍도의 이야기는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지만 내가 동현이었더라도 의심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동현은 헬싱키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사이 처음 보는 낯선 여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의 시나리오 스크랩북까지 읽고 있다. 여자는 난데없이 스크랩북 속 이진길(1561년생)이 자기 아버지라 말하고, 본인은 경진년생(1580년생) ‘이영’이라고 밝힌다. 동현은 여자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과 끌림을 느낀다. 일단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홍도는 막힘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동현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도 믿음직스럽게 이야기하는 홍도에게 매료됐다.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는 여자에게 끌린다는 것은 그녀의 외형에 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언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거다. 홍도의 특별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밝힌다. 왜 홍도의 죽도 할아버지, 즉 ‘정여립’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지. 127쪽부터 시작되는 ‘지금 이 순간’엔 상처가 된 옛사랑의 이야기와 우연히 엿본 노년의 불륜이 담겼다. 홍도와 동현의 순간에 끼어든 작가의 무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성식 할아버지를 내버린 채 다른 이와 불륜을 저지르는 이미옥 할머니. 모르게 하고, 모르는 척하는 그들의 색다른 순애보. 그 안에서 작가는 유정이란 인물을 일순간 끄집어냈다.


조선땅에 분 찬바람이 홍도의 많은 것을 앗아갔다. 홍도는 할머니와 죽도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죽게 한 왕가가 너무 미웠다. 박식한 홍도는 꾀를 내어 정주옹주의 신분을 훔쳐 몇 년을 살았다. 옹주에서 한순간에 비천한 신분으로 내려앉은 정주는 훗날 다시 만난 홍도를 원망하지 않았다. 편 가르기에서 졌을 당시엔 억하심정을 품었을 것이나 이젠 이미 버려진 몸에 대한 한숨뿐이었다. 오히려 고독했던 자신을 찾아준 홍도에게 고맙다고 했다. 애먼 곳을 겨눈 분풀이는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났다. 살아남으려 내린 선택과 복수는 꽃나비가 되어 날아간 목숨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고국으로, 그리고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홍도는 두 다리를 잃은 채 도적이 된 자치기와 재회한다. 홍도와 자치기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혼인을 올리고,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아이를 낳던 날, 홍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일순간에 자치기와 아이, 항아 모두를 잃었다. 2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홍도는 아버지와 똑 닮은 사내와 마주한다. 홍도의 아버지는 천주교도 ‘김한빈’으로 환생했지만 믿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조선땅에서 다시 죽고 말았다. 이내 믿음이 죄가 아닌 세상이 도래했고 1902년, 홍도는 미국으로 떠났다. 경유 차 들른 일본에서 서양 사내가 된 정주도 만나 함께했다. 수백 년, 일련의 모든 일을 담담히 털어놓는 홍도 옆엔 여전히 동현이 있다.


“기억은, 기억이란 게 항상 제멋대로입니다. 사람은 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을 기억하기 마련이지요. 그러다 보니 제가 기억한다고 모두 사실인 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 분명히 터무니없는 것들만도 또한 아닐 것입니다.” -p373


죽지 못하는 생(生). 사랑하는 이들과 엇비슷하게 맞춘 발걸음이 아니라면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이 무슨 의미일까. 더 고통스러운 건 그 모든 나날을 기억하는 일이다. 형벌과도 같은 억겁의 영생을 강제로 선물 받은 홍도는 처연한 삶의 자락을 붙잡고 수백 년을 살아내었다. 그리하여 타국에서 고국 땅으로 차오르는 동안 동현을 만났다.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과 이토록 애틋한 연이 닿아 있을 줄 안다면 지금 더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맞다.


잔잔한 사극풍 연주곡과 함께 <홍도>를 읽어내리는 순간엔 어질러진 방도, 책상 위 먼지도 보이지 않았다. 거칠지만 보드라운 책장을 넘기며 어렴풋하게나마 홍도의 시선을 따라갔다. 지금은 사어(死語)가 된 낯선 단어들이 무수했지만, 참뜻을 느끼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친절한 설명은 물론이고, 나 또한 글자 이상으로 잠겨 읽었기 때문이었다.


미천한 말잡이 자치기와 지체 높은 아가씨 홍도는 한 번의 이별과 한 번의 윤회를 견뎌 결국 서로를 알아봤다. 끝이 시작이 되고, 시작은 또 다른 결말을 향한 처음이 된 셈이다. 진정 사랑을 되찾은 홍도는 영생에서 벗어났을까? 함께 늙어가지 못한다면 그 또한 슬픔이지 않을까? 아니다, 곁의 동현이 언젠가 떠나간다 해도 수백 번의 달이 진 어느 날 홍도는 분명 다시 찾아낼 것이다. 할머니를, 죽도 할아버지를, 항아를···세정(細情)으로 엮인 ‘홍도’는 내게 오랜 여운을 남기고 갔다.


정여립에 관한 소설을 쓰려던 때 자전거 낙상을 당한 작가는 그 후 기존 원고를 모두 지우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얼마 전 실수 한 번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있던 천 개의 글조각을 날렸던 때가 떠올랐다. 작가의 첫 글줄은 백지가 되었지만 무르익은 흔적이 짙게 배어 바알간 ‘홍도’가 되었다. 동현(어쩌면 대현)의 삶이 부러웠다. 내 것을 향해 뛰어드는 행동과 도전이 탐이 났다. 멀쩡한 두 다리를 갖고도 자치기만큼의 용기도 없이 살아가는 나의 유한이야말로 홍도의 무한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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