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흥망성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내 의도와 감정은 얕아도 말 하나로 다른 이의 가슴에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상처 받고, 상처 줬던 순간들까지. 타인에 관해 오가는 말도 너무나 많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서기를 두고 있다면 하루에 한 번씩 책이 나오지 않을까?
모든 의사소통이 울음으로 통하는 갓난아기가 아닌 이상, 입을 열고 말하는 순간 상대에겐 언어로써 전달된다. 입 밖으로, 귓속으로 언어가 담기면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이지?' '내가 했던 말을 그 사람이 오해하면 어떡할까?'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랬어'와 같은 잔 고민들의 연속이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내 온도와 상대의 온도가 일치하는 건 눈감고 흔들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언어에 예민하고 생각이 (쓸데없이) 많은 나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선 말을 삼키고 귀를 여는 경우가 많다. 얼기설기 머릿속 회로가 꼬인 듯 가벼운 질문에 제동이 걸리기도하고, 실시간 일기를 쓰듯 지나간 대화를 온종일 곱씹기도 한다.
그런 나도 썰물이 되어 바닥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남과는 마주하기 민망한 차림이 아무렇지 않고 거침없이 꽃과 가시를 나눌 수 있는 존재. 한 몸이 아니기에 때때로 열탕과 냉탕을 오가지만 함께 있는 공기가 너무 익숙한 또 다른 숨.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중대 사안까지 모든 걸 나누는 사람들. 내 선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생각해주고 내 실수 또한 즐거운 맥주 몇 잔에 날려버린 채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사람. 가장 꾸밈없는 모습으로 만나서 제일 멋진 인간이 되어가는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가족이다. -2018년 어느 날의 메모
사회에서 얻어오는 미세먼지 같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뚜한 표정을 걸친 채 모난 말을 뱉는 순간. 그 시선 끝에 누가 있는지 의식할 시간이 필요하다. 녹지 않는 눈사람을 가진 듯 여유를 부리고 멀리 있는 신기루를 애가 타게 좇는 삶. 매번 한발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