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읽고보고서] 잡지 AROUND(어라운드) 60호

by 곰살


사람들은 다른 이의 방을 궁금해한다. 나와 어떤 게 비슷한지 또는 얼마나 다르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 유튜버들의 룸 투어, TV 프로그램에서 집을 공개하는 방송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라운드(AROUND) 속 큰 창이 있는 방, 모노톤으로 정돈된 방, 오롯한 휴식을 위한 방, 집을 떠나온 방, 예술가의 방 등 저마다 다른 누군가의 방을 보며 내 방, 내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내 방에 대한 첫 기억은 7살 때다. 20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는데 복도를 곁에 둔 게 내 방이었다. 그런데 밤만 되면 옆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것 같았고, 전래동화라도 틀고 잘라치면 오만 상상에 식은땀을 흘릴 때도 몇 번 있었다. 복도로 통하는 창에 어릿하게 비친 그림자를 볼 때면 지금 생각해도 기절할 노릇이었다. 자는 게 무서워지자 미닫이문이 있던 거실을 내 방으로 쓰고 싶다며 엄마에게 졸랐다. 내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여져 거실에 침대를 놓았다. 그래봤자 거실은 거실. 난 그저 밤에 잠만 자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1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수염 난 레옹 액자 때문에 얼마 못 갔다.

어린 내겐 너무 무서웠던 레옹 아저씨

다음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살게 된 집이었다. 그곳에서 14년을 살았다. 내 키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방은 더욱 작게 느껴졌지만 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땐 민트색에 빠져 페인트로 방 베란다 벽을 엄마와 직접 칠했고, 스무 살엔 짙은 차콜 색에 빠져 이불부터 베개, 벽지까지 차콜로 통일하기도 했다. 다음 방은 더 작아졌었다. 처음엔 내가 원치 않는 붙박이장과 책장으로 둘러싸인 큰 방을 썼었지만 나는 작더라도 '내 것'으로만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그 방을 택했다. 산골 어느 암자,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방만한 크기였지만 벙커 침대 아래로 내 소유의 가구들을 가장 많이 들여놓았던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곳에선 늘 고개를 숙이거나 서있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현재 진형형인 내 방이다. 그간의 방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 크고 내가 꿈꿔왔던 방과 가장 닮아있다.(처음엔 너무 감격스러워 잠도 안 왔다)

예쁜 나무 계단을 올라 문 대신 달아놓은 커튼을 밀고 들어가면 왼편엔 벙커침대가, 그 밑엔 읽어달라고 울다 지쳐 잠든 책들이 쌓여있다. 옆으론 4계절 조합해 입을 수 있는 옷가지들이 행거에 걸려있고, 15년 넘도록 쓴 책상(前식탁)도 있다. 이케아에서 산 철제 소파 앞엔 TV, 냉장고, 수납장, LP 플레이어를 비롯해 엄마가 그려준 그림, 동생이 사준 빈티지 소품, 필라멘트 스탠드 등 소중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전에 비해 너무 광활한 것 아닌가 했던 복에 겨운 우려는 정말 잠시뿐, 심심보단 심란이 특기인지라 쟁여두고 걸어두고 채워놨다.


전무후무할 정도로 더웠던 여름을 아래에서 보내고 다시 올라왔을 땐 새삼스럽게 더 감사한 마음이 들곤 했다. 크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잠을 자는 공간만이 아닌, 있음으로써 행복하고 새로운 창조성이 생길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니까. 고요한 어둠이 내렸을 때 음악을 틀어놓고 할 일을 하거나 영화 볼 때를 가장 좋아한다(나는 그때를 '꼬리가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얘기했었다)


에디터 김혜원의 <현재 페이지를 북마크에 추가합니다>를 읽고 다시 느낀 건 내가 글을 들여놓는 이 블로그(브런치)도 역시 나의 방이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이지만 완벽히 사적인 공간은 아닌, 조금이나마 정돈된 빨래를 개켜놓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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