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갖고 싸우는 사람들과 한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것이 무슨 인연으로 얽힌 것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삶과 삶의 이야기'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페이지 속의 '나'는 차순아에게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앞길을 단단히 하기 위해 개구리 피아노 건반 뛰듯 난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추억을 나누던 친구는 혼수상태가 되어 말이 없고 그 옛날 풋풋하다 못해 포슬거리는 차순아가 다시 나타나면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민우는 박민우의 그림자를 따라 살아왔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몇 탕을 뛰어도 허탕을 칠 수밖에 없는 진흙탕 같은 삶. 우리는 모두 김민우와 정우희의 삶을 살고 있다. 일과 사랑.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없는 우리이기에 인생의 파노라마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루지 못해 아쉽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 웅덩이를 만든다 해도 딱히 어찌할 수 없는 그것. 내 갈 길 만을 생각하느라 내 안에 들어온 이들을 보듬어주지 못한 회한이 남는 것. 하나의 과거 속에 존재했던 두 사람이 겪는 시간의 격차는 1번과 6번 라인을 달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어떤 이를 마음속에 그리며 평생을 보내고 누군가는 끼니를 거른 것처럼 당시에는 착잡하나 결국 무탈하게 살아간다.
부모의 삶을 따라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부모보다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그릴 줄은 알게 되었으나 우스운 열정으로 추락해버리고 내 돈으로 벌어먹는 것들이 겨우 치킨 몇 조각과 옷 몇 벌인, 여전히 아빠의 건강보험 안에 들어있는 딸내미일 뿐이다. 저자 황석영은 인간 삶 전체의 감정을 짧고 굵게 조망하고 있다. 내가 걸어온 과거, 걷고 있는 현재, 앞으로 가야 미래가 모래먼지가 날리는 길 위에 놓인 것 같았다. 딱한 사정에 놓인 이들의 모습 위에 나 자신이 얹혀 더부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낮밤이 짧고 긴 것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 질 무렵은 온다. 그리고 그 영상(映像)은 관찰하는 자에게만 찾아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리지 않으면 금세 조명 빛과 어둠에 가려 붙잡을 수가 없다. 스스로 살아가는 시공간을 자각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움. 눈부시게 일어나거나 떠오르지 않더라도 삶의 회한과 깨달음을 통해 제대로 물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런 석양을 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