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보고서]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윤종신 作

by 곰살

"굿모닝 나 이제 그만 잘게/ 오늘 하루 힘내길 바래/ 낮과 밤이 거꾸로 가는 우리···" -윤종신, Long D. 中


이방에서 오로지 자유로운 음악인으로 살고 있는 윤종신이 2020 월간 윤종신 2월호를 발표했다. 며칠 전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음질이었다. 전문적인 녹음실에서 불렀다기 보단, 에코가 덜 들어간 노래방이나 집 안에서 부른 것처럼 다소 거칠게 들렸다. 상황이 그랬던 건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날로그적인 곡의 분위기가 자꾸만 n번 재생을 불렀다. 윤종신의 'Long D.'는 표면적으로는 장거리 연애하는 롱디 커플의 이야기요, 결국엔 물리적인 시차가 아니어도 맞지 않는 관계의 리듬을 담담히 노래하고 있다.


2018년 1월 마지막 날, 윤종신의 콘서트를 보러 갔었다. '좋니'로 한창 떠들썩했을 때였지만 단 한 곡의 흥행으로 인한 호기심은 아니었다. 언젠가 내 돈 주고 콘서트를 보게 된다면 그 첫 경험이 윤종신이나 바이브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공연은 생각처럼,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노래 속에 삶을 널어놓는 윤종신의 표현법과 그의 음악이 나는 좋다.


아래 글은 윤종신이 발간했던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를 읽은 후의 감상


윤종신의 콘서트를 본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내게 윤종신이란 좋은 곡 쓰는 작사가이자 가수, '라디오스타' MC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콘서트 후엔 더 멋있어 보였고 KBS2 '건반위의 하이에나'를 보곤 그 부지런함에 존경심까지 들 정도였다. 무턱대고 저지르는 사람들이 판을 치고 얼마 안가 나자빠지는 세상에서 꾸준히 그리고 부단히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입담을 늘어놓고, 소속 가수들의 프로듀싱까지 하는, 그럴 새가 있었나 싶지만 어느새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사람. 그런 그가 산문집까지 냈을 줄이야. 예술가는 면면이 다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감각하는 순간이었다.

양장본 표지엔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담긴 듯한 CD 한 장이, 제목도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이다. 혹시 그의 노래 중에 이런 제목이 있었나 해서 찾아보았지만 아니다. 책은 보통 읽으려고 사지만 이번엔 윤종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관객은 없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에서 그의 계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목차 안에는 종이에 멜로디가 배인 것처럼 낯이 익다.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것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도 섞여있지만 분명한 건 목차 조차도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


윤종신의 음악이, 특히 가사가 좋은 이유는 지극히 사소하기 때문이다. 사소하다는 게 사전적 의미의 '보잘것없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떠올렸을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사로 택한다. 그 이별과 상황이 굳이 딱 떨어지는 나의 일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공감하며 위로할 수 있는 글자가 되어준다. 지식의 나열에서 나오는 어려운 글이 아닌, 감정의 나열로부터 오는 말.


"한마디로 말해버리면 그만인 감정을 최선을 다해 복원하고 기록하고 묘사하는 거죠. 누군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순간을, 누군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감정을, 누군가는 그런가 보다 하고 금세 잊어버렸을 느낌을 대신 발견하고 간직하고 재현하는 거예요." p88. '마침 흘러나온 그때 그 노래' 中


한동안 윤종신의 '나이'에 빠져 수도 없이 반복해 듣던 때가 있었다. '나이 들어 후회 말고 지금 잘하자'는 진부하지만 단호한 진리를 일상의 안일함에 흘려보내던 난, 정확히 4분 58초 동안 진동했다. '이것저것 뒤범벅이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부분에선 삶의 끄트머리에서 목 놓아 고해성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CD에서 MP3로, 핸드폰으로, 음원 사이트로.. 담기는 공간은 만질 수도 없이 작아졌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죄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무엇(What)이 되었다. 죽어도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예술가의 역사란.

그가 음악을 하는 공간이 책 속에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윤종신의 음악'을 만드는 곳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딱딱한 기계들과 선들이 무표정하게 연결되어 있다.
"<추위>를 쓰면서 창작자는 '나그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착하지 않고 계속 떠도는 나그네처럼 창작자 또한 끊임없이 뭔가를 두드리고 경험하고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왜냐하면 창작자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정착하다 보면 안주하게 될 테고, 안주하면 고이게 될 테고, 고이면 새로운 게 나올 수 없을 테니까요. 새로운 걸 만들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더는 창작자가 아니겠죠." p234. '까마득한 이 계절의 끝' 中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 영감을 받아 만든 '사라진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가사로 보나, 풀어쓴 해설로 보나 어디 하나 허투루인 곳이 없었다. 마주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창작해가는 윤종신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글, 누군가의 영화, 누군가의 음악에 공명(共鳴)하며 살 수 있기를.


윤종신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그가 부록처럼 담아준 음악들을 재생목록에 다 담았다.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한 조각의 사람도. 윤종신은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하면 매력적이고 공감이 되어줄지를 아는 똑똑한 뮤지션이었고, 현명한 아버지였으며,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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