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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n 30. 2022

시계와 시간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왼쪽 손목에서 요상한 느낌이 들었다. 갤럭시 워치의 액정이 절벽에 매달린 애처로운 손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곱게 쓰다 이제 한번 손봐줄 때가 됐나 보다 하고 덤덤하게 삼성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지난번 업데이트 오류로 인한 초기화 사건과는 전혀 다른 편안함.


워치의 순기능은 편리함, 모양은 언제나 동그라미라 '이 참에 바꿔야겠다' 같은 물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워치는 배터리와 일체형인데 수명이 다하자 부풀면서 액정을 밀어낸 거란다. 딱히 약도 없단다. 고칠 바에 새로 사는 게 낫다는 전자제품의 메커니즘.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문밖을 나서야 했다.

워치가 손목에서 사라지자 달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뗀 것처럼 허전하고 한편으론 답답했다. 함께했던 2년 5개월이 떠올랐다. 제주 한달살이와 홀로 기차여행, 수차례 캠핑, 왕복 4시간 출퇴근, 퇴사 후 세 모녀 제주 여행, 간헐적 운동이나 한가로운 산책까지. 보를 걸은 날도 만보를 걸은 날도 늘 함께였다. 지나간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다 하였던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추억은 시계 그 이상의 의미를 만들었고, 얼른 새 워치를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시 액티브를 살까, 이번엔 클래식을 살까, 스트랩은 뭘로 하지? 그냥 새 시리즈를 기다릴까? 일단은 새 시리즈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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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이 흘렀다. 띠를 두른 듯 새하얗던 시계 자국은 옅어졌고, 더는 습관적으로 손목을 돌리지 않는다. 워치 없이도 나날은 잘만 넘어갔다. 안달하던 소유욕이 가라앉자 걸러진 생각 하나, 하루빨리 손목에 다시 채우고 싶던 그것은 그저 번지르르한 사물이 그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 생각 둘, 아무리 똑똑한 시계라도 시각을 가리킬 뿐 낮과 밤, 새벽을 알아차리는 건 온전히 내 시간의 몫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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