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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l 17. 2022

끝이 없는 장마의 시작

유월을 조심하세요

더없이 쾌청했던 하늘이 자취를 감추고 끄물끄물 해지더니, 빗방울이 창을 마구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전원에서의 첫 장마를 기대(?)하고 대비하던 날들은 말 그대로 '개미와의 전쟁'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 비가 그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거야. 모두 떠나갈 거야.

우리 집 테라스에서 쏟아진 물벼락. 바닥에 파인 홈을 따라 줄을 넘는 내게까지 왔다.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던 물은 흑과 백으로 나뉘어 작은 지도를 형성했다. 그 안에 갇힌 개미 한 마리. 오갈 데 없이 계속 이리저리 머뭇거린다.

한 곡이 끝나고 두 곡이 끝나도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조금만 더 가면 마른 육지를 만날 수 있을 텐데 개미는 잠깐 발만 담그곤 다시 주저하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겠지. 조금만 더 가면 원하던 걸 마주할지도 모르는데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리니까.

지켜보다 못내 안쓰러워 나뭇잎을 가져다 올라타라고 신호를 줬다. 손에 들린 나뭇잎도 제 적으로 보이는지 나를 모른 체하는 개미. '그래 거인인 내가 없는 게 낫겠다' 싶어 나뭇잎만 가지런히 놓자 개미는 그걸 구름다리 삼아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온다.

빠져나가지 못했어도 끝까지 포기하진 않았던 개미. 뵈지도 않는 발을 이리저리 굴려 살고자 노력하던 그 개미에게 내가 줬던 작은 선물.

단정한 신도시에서는 이런 정서를 가진 적도 있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다 했던가. 살생 후의 죄책감, 그럼에도 마주치는 순간 불타오르는 진압의 의지, 지피지기로 시작된 폭풍 검색, 살생의 합리화와 조금씩 무뎌지는 죄책감. 자연과 어우러지겠다던 나는, 자연에선 그러려니 해야 한다던 나는 지속된 (곤) 충전(쟁) 이후 아무 일 없는 벽에서도 개미와 거미를 찾고 있다. 오히려 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흐리고 축축한 이슬이 내린 어느 날 새벽은 '거미줄 테러'로 아수라장. 빨래 건조대, 나무, 벽 너 나 할 것 없이 천지였다. 빗자루로 열심히 거미집 수십 곳을 강제 퇴거했다. 걔네도 우리도 저마다 살자고 하는 일. 미안하긴 하지만 이 대결에서만큼은 절대 져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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