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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l 18. 2022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지 않아요.

과거 회사에서 부서 전체가 자리를 이동한 적이 있다. 서랍 안에 있던 짐을 모두 빼 나른 뒤 물티슈로 책상과 서랍, 의자를 닦았다. 떠나는 자리를 늘 단도리하는 습관으로 인한 행동이었지만, 내 자리에 오게 될 그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낯선 건물, 낯선 엘리베이터를 지나 낯선 공간에 들어선 내게 천편일률적인 사무용 책상과 의자는 조금의 위안이었다.


새 자리의 책상과 서랍, 의자를 닦고 서랍을 열었다. 문제라면 여기부터였다. 스타벅스 빨대와 면봉, 10원짜리 동전, 알약, 고장 난 손풍기, 구둣주걱, 영화표, 라이터, 지우개 가루, 옷핀, 끈적거리는 펜, 말라버린 물티슈, 영수증이 내게 이월됐다. 심지어 흙도 있었다. 책상 밑 슬리퍼 처리도 내 몫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이의 알 수 없는 삶이 어렴풋하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필요한 것은 빼놓지 않고 챙겼을 그 사람. 서랍을 쓰레기통 삼아 손때 묻은 사물들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간 그 사람.




전원주택으로의 이사가 결정된 후 우리에겐 수개월의 기한이 있었다. 전 주인이 떠나고 빈집인 채로 몇 달이 흘렀다. 나무와 꽃들은 시들지 않았을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상하기 마련인데 어떠한 모습으로 비어 있을지 걱정하고 기대하고 상상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입주 전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싶었지만, 가구 배치 계획 겸 하루 날을 잡아 청소라도 해놓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그 어떤 하루도 허용되지 않았다.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별도의 협의 없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다소 매정한 상황을 이해하고 디데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준비된 건 우리의 마음뿐이었을까? 이삿날 짐을 쌀 때에도, 풀 때에도 수차례 돌발상황과 고비가 찾아왔다. 가능하다던 사다리차는 불가했고, 전 사람들의 가구가 빠진 집안에는 아이들의 낙서와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 이름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난로 옆에는 먹다 버린 고구마 잔해가 발견됐고, 마당에는 키다리처럼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이사 전까지 걱정을 붙들어 매 준다던 관리자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원생활에 필요한 비품들을 남겨둔 배려는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는 필요치 않아 주기로 했을 뿐, 그것이 쓰레기도 함께 받아야 하는 이유인지는 의문이었다. 누군가의 탓을 하면 원망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모로 화도 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 하였나? 우리는 여전히 그 바람을 맞으며 하나하나 해결 가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건물 화장실에는 늘 이런 문구가 쓰여 있곤 했다.

아니,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지 않아요. 그러니 깨끗이 치우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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