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회사에서 부서 전체가 자리를 이동한 적이 있다. 서랍 안에 있던 짐을 모두 빼 나른 뒤 물티슈로 책상과 서랍, 의자를 닦았다. 떠나는 자리를 늘 단도리하는 습관으로 인한 행동이었지만, 내 자리에 오게 될 그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낯선 건물, 낯선 엘리베이터를 지나 낯선 공간에 들어선 내게 천편일률적인 사무용 책상과 의자는 조금의 위안이었다.
새 자리의 책상과 서랍, 의자를 닦고 서랍을 열었다. 문제라면 여기부터였다. 스타벅스 빨대와 면봉, 10원짜리 동전, 알약, 고장 난 손풍기, 구둣주걱, 영화표, 라이터, 지우개 가루, 옷핀, 끈적거리는 펜, 말라버린 물티슈, 영수증이 내게 이월됐다. 심지어 흙도 있었다. 책상 밑 슬리퍼 처리도 내 몫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이의 알 수 없는 삶이 어렴풋하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필요한 것은 빼놓지 않고 챙겼을 그 사람. 서랍을 쓰레기통 삼아 손때 묻은 사물들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간 그 사람.
전원주택으로의 이사가 결정된 후 우리에겐 수개월의 기한이 있었다. 전 주인이 떠나고 빈집인 채로 몇 달이 흘렀다. 나무와 꽃들은 시들지 않았을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상하기 마련인데 어떠한 모습으로 비어 있을지 걱정하고 기대하고 상상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입주 전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싶었지만, 가구 배치 계획 겸 하루 날을 잡아 청소라도 해놓고 싶었지만, 우리에겐 그 어떤 하루도 허용되지 않았다.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별도의 협의 없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다소 매정한 상황을 이해하고 디데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준비된 건 우리의 마음뿐이었을까? 이삿날 짐을 쌀 때에도, 풀 때에도 수차례 돌발상황과 고비가 찾아왔다. 가능하다던 사다리차는 불가했고, 전 사람들의 가구가 빠진 집안에는 아이들의 낙서와 덕지덕지 붙은 스티커, 이름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난로 옆에는 먹다 버린 고구마 잔해가 발견됐고, 마당에는 키다리처럼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이사 전까지 걱정을 붙들어 매 준다던 관리자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원생활에 필요한 비품들을 남겨둔 배려는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더는 필요치 않아 주기로 했을 뿐, 그것이 쓰레기도 함께 받아야 하는 이유인지는 의문이었다. 누군가의 탓을 하면 원망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모로 화도 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 하였나? 우리는 여전히 그 바람을 맞으며 하나하나 해결해가고 있다.